인체의 면역반응을 모방한 ‘인공 혈관 칩’에 혈액 한 방울을 떨어뜨려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 여부를 즉석에서 진단하는 기술이 나왔다. 열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감염 여부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복잡한 검사기가 필요 없어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다.
UNIST(총장 이용훈) 바이오메디컬공학과(BME)의 강주헌 교수팀은 병원균(세균, 바이러스 등) 감염 여부를 조기에 판별 할 수 있는 미세 유체 칩을 개발했다. 머리카락 수준으로 가느다란 관으로 이뤄진 칩에 감염된 혈액(유체)을 넣으면 혈액 속 백혈구가 유체 관(인공 혈관) 벽면에 달라붙는다. 감염된 사람은 벽에 달라붙는 백혈구 숫자가 건강한 사람에 비해 눈에 띄게 많기 때문에 저배율의 광학현미경만으로 감염여부를 쉽게 판독 할 수 있다.
검사에 소요되는 시간은 10분 내외로 짧다. 또 감염 극초기(감염된지 1시간)에도 감염여부를 알아 낼 수 있어 열과 같은 증상이 없는 잠복기 환자를 조기에 선별할 수 있다. 문진이나 체온 검진에 의존하고 있는 코로나 환자 선별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면역세포(백혈구)가 감염이 발생된 부위로 이동하기 위해 혈관 내벽을 통과(혈관외유출)하는 과정에서 혈관 내벽에 붙는 현상을 모방했다. 개발한 칩의 유체 관 벽면에는 감염 시 혈관 내피세포가 발현하는 단백질이 코팅돼 있다. 이 단백질은 혈액 속을 떠다니는 백혈구를 붙잡는 역할을 한다. 환자의 백혈구 표면에서도 혈관 내벽 단백질과 짝을 이루는 단백질 발현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백혈구의 비율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환자의 혈액을 미세 유체 관에 흘렸을 경우, 유체 관 벽면에 달라붙는 백혈구 숫자가 건강한 사람에 비해 훨씬 많다.
제1저자인 권세용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연구교수는 “감염시 혈관 내벽 세포의 특정 단백질의 발현량이 증가 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졌지만, 백혈구 표면의 단백질 발현량 증가와 그 단백질을 발현 하는 백혈구 비율의 증가는 이번 연구로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라고 밝혔다.
공동 1저자인 아만졸 커마쉐브 (Amanzhol Kurmashev) 연구원은 “면역반응은 원인균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세균, 바이러스 감염여부 진단에 쓸 수 있고, 감염병 뿐만 아니라 암 조기 진단에도 응용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항생제 저항성 세균에 감염된 쥐로 개발된 미세 유체 칩의 성능을 테스트했다. 감염된 쥐의 혈액 한 방울 (50마이크로 리터)을 미세유체 소자에 흘려주었을 때 감염되지 않는 쥐보다 더 많은 양의 백혈구가 유체 관 벽면에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감염 된지 1시간 밖에 지나지 않은 초기에도 정상쥐와 비교해 더 많은 양의 백혈구가 붙어 있었다. 감염 환자 조기 선별이 가능한 대목이다.
강주헌 교수는 “기존의 혈액배양이나 PCR검사 방법보다 더 빠른 시간 안에 진단 결과를 알 수 있고, 진단에 필요한 광학현미경도 이미지 확대에 필요한 배율이 낮아 스마트폰에 장착이 가능한 수준”이라며 “궁극적으로 5~10분 내에 감염여부를 진단하는 저렴한 휴대용 진단 시스템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인체에도 동일한 면역 시스템이 있고, 인간의 백혈구는 실험에 사용된 쥐보다 수천 배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상용화 가능성이 높다”며 “병원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환자를 선별하는 임상 연구를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엘스비어(Elsevier)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세계적인 학술지인 ‘Biosensors and Bioelectronics’에 8월 29일자로 온라인 공개돼 출판을 앞두고 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삼성전자미래육성센터, 교육부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