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은 지휘자 없이도 박자를 맞춰 동시에 깜박인다. 진동하는 두 시계추도 서서히 박자를 맞춘다. 동기화 현상이다. 흐르는 액체 속에서도 동기화 현상이 나타난다. 물 속에서 유영하는 세포나 미생물의 무수히 많은 발(섬모, 편모)이 보이는 일사불란한 움직임들이다. 이런 현상을 설명할 이론이 나와 눈길을 끈다.
UNIST(총장 이용훈) 물리학과 정준우 교수팀은 미세한 기름관(미세유체관)에서 작은 물방울들을 만들 때 저절로 박자를 맞추는 현상을 최초로 발견했다. 또 이 동기화 현상의 원인을 설명할 이론적 모델까지 제시했다.
기름이 흐르는 미세유체관에 물을 양옆에서 넣어주면 기름과 섞이지 않는 물줄기가 스스로 끊어져 물방울이 된다. 원래 이 물방울은 양쪽에서 엇박자로 만들어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연구팀은 특정조건에서 처음에는 제각각 만들어지던 물방울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박자를 맞추며 동기화 되는 장면을 잡았다.
연구팀은 이를 ‘경계면 간(계면)의 상호작용이라는 물리학적 원리’로 설명했다. 물-기름 간 경계면에서 미세하게 발생하는 진동을 시계추처럼 하나의 진동자로 본 것이다. 물방울이 여러 개 생기면 진동자가 물방울 수만큼 생기고 여러 진동자 간의 상호작용으로 물방울 생성 주기가 맞춰진다. 마찬가지로 물 속에서 떠다니는 세포의 섬모를 하나의 진동자로 보면 섬모들이 박자를 맞춰 움직이는 행태를 설명할 수 있다.
연구팀은 두 물방울 생성이 박자를 맞추는 정도를 두 물방울(계면)의 거리, 액체의 흐름 속도, 점도 등을 조절해 바꿨다. 이는 암이나 병원균을 진단하는 랩온어칩(Lap-on-a-chip)에서 액체 시료의 흐름을 조절하는 데 쓰일 수 있는 기술이다.
제1저자이자 공동교신저자인 엄유진 UNIST 물리학과 연구교수는 “랩온어칩을 이용한 물방울 생성에 대한 기존 연구들이 간과했던, ‘동시 생성’ 동기화를 최초로 관찰한 것”이라고 강조하며 “이 모델 시스템을 이용하여 미세유체 내에서 일어나는 동기화 현상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정준우 교수는 “동기화 현상을 직관적인 원리와 함께 설명할 수 있는 교과서적인 모델 시스템으로, 복잡한 구조 제작 없이 유체를 제어할 수 있는 미래형 랩온어칩 기술로 유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강주헌 교수가 참여한 이번 연구는 네이처(Nature)의 자매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10월 15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연구수행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의 연구과제(대통령 포스닥 펠로우십)와 UNIST 기초과학연구소의 지원으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