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너무 밝거나 습한 환경, 시끄러운 공간, 영양이 부족한 몸 상태 등의 조건이라면 같은 사람이라도 수면의 양과 질이 달라진다. ‘기온’도 수면에 영향을 주는데, 최근 둘의 연결고리를 설명하는 연구가 나와 눈길을 끈다.
UNIST(총장 이용훈) 생명과학부의 임정훈 교수팀은 초파리 모델을 활용해 ‘기온에 따라 수면 패턴이 변하는 원리’를 밝히는 데 성공했다.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가바(GABA; Gamma-Amino Butyric Acid)’를 사용하여 신호를 주고받는 수면조절 신경세포들 간의 ‘연접 부위(시냅스)’가 기온이 높아지면 사라져 수면 패턴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철이 되면 사람들은 낮 동안 나른하고 밤에는 잠을 못 이루는 ‘열대야 수면 패턴’을 보인다. 초파리도 이와 비슷하게 무더운 환경에서 낮 동안 적게 활동하고 밤에는 잠에 잘 들지 못한다. 연구팀은 이 현상의 신경생리학적 원리를 찾고자 형질전환 초파리를 무더운 여름과 흡사한 환경에서 배양하며 수면 패턴을 관찰했다.
임 교수팀은 이 현상이 ‘수면촉진 신경세포다발(dFSB; dorsal Fan-Shaped Body neuron)’과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가바(GABA)’ 사이의 연결고리가 사라져서임을 밝혔다. 셰이커 유전자 돌연변이는 가바 신호전달 과정을 과도하게 활성화해 수면을 억제한다. 그런데 기온이 높아지면 ‘가바(GABA)를 생산하는 신경세포’와 ‘수면을 촉진하는 신경세포(dFSB)’ 사이의 시냅스가 사라진다. 가바를 전달해서 수면을 억제하기 어려워지므로 더 잘 자게 되는 것이다.
또 살아있는 초파리 뇌의 칼슘 이온(Ca²⁺) 이미징 기법을 이용해 ‘수면촉진 신경세포(dFSB)를 조절하는 신호가 기온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도 규명했다. 낮은 기온(21℃)에서 가바가, 높은 기온(29℃)에서는 또 다른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dopamine)이 수면촉진 신경세포(dFSB)의 활성을 제어하는 게 관찰된 것이다.
연구에 참여한 김지형 UNIST 생명과학과 박사과정 연구원은 “가바 신호전달 시냅스가 사라지는 높은 온도에서는 수면촉진 신경세포다발(dFSB)의 도파민 반응성이 활발해진다”며 “이 현상은 기온 변화에 따른 가바 신호전달체계의 가소성이 또 다른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작용에도 관여한다는 걸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발견”이라고 설명했다.
임정훈 교수는 “이번 연구는 ‘기온’이라는 환경요인이 수면촉진 신경세포(dSFB)의 가소성을 어떠한 방식으로 이끄는지, 또 어떻게 수면이라는 복합적인 행동으로 구현되는지 신경유전학적으로 설명한 것”이라며 “춘곤증이나 여름철 열대야 현상 등으로 인한 수면패턴의 변화를 이해하고, 이로 인한 수면장애를 해소할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바이올로지(Communications Biology)’에 4월 15일자로 공개됐다. 연구 수행은 서경배과학재단, 한국연구재단의 선도연구센터지원사업, X-프로젝트, 글로벌박사양성사업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