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균 검출이나 암세포 진단용 미세유체 칩은 액체 시료를 걸러내는 나노박막과 시료의 흐름을 제어하는 동력장치나 화학적 자극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매번 필터용 미세 박막을 새로 제작하거나 자극 조절 실패로 시료가 손상되는 등의 문제가 잇따른다.
UNIST(총장 이용훈) 기계공학과의 김태성 교수팀은 시료 손상 없이 미세유체칩 내부의 액체(용매) 증발 현상만으로 약물, 신경전달 물질, DNA 조각과 같은 저분자(small molecule) 물질의 투입을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 방식과 달리 별도의 동력장치나 강한 자극이 필요 없어 시료에 손상을 주지 않고, 시료를 걸러내는 필터나 밸브 기능뿐 아니라 농축이나 펌프 기능도 가능한 다목적 제어 원천 기술이란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김 교수팀은 미세유체 관의 일부인 나노슬릿(Nanoslit) 관 벽면의 미세한 틈에서 액체가 증발하면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액체 흐름이 증발이 일어난 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이용했다. 액체 속에 포함된 시료가 액체가 흐르는 방향에 따라 한곳에 모이거나 확산하게 되는 원리다. 나노슬릿 관 높이는 수 나노미터(10-9m)로 낮은 반면 단면 길이는 마이크로미터(10-6m) 단위로 길어 증발로 인한 유체 흐름 변화를 극대화할 수 있다.
증발을 조절하기 위한 습도 변화 외에는 외부 자극이 필요 없으며 나노슬릿도 크랙-포토리소그래피를 통해 쉽게 제작 가능하다. 크랙-포토리소그래피는 반도체 공정 등에서 흔히 쓰이는 포토리소그래피를 변형한 공정으로 연구진이 선행연구를 통해 개발했다.
연구진은 두 개의 메인칩(원료칩과 타켓칩)이 나노슬릿으로 연결된 미세유체 칩을 제작해 나노슬릿이 시료를 농축하거나 타켓칩에 시료 주입을 조절하는 밸브, 필터 등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특히 1시간 만에 원료칩 내 저분자 농도의 256 배에 해당하는 농도로 시료(형광분자) 농축이 가능했다.
김 교수는 “미세 유체 환경에서 저분자 전달 제어기술은 바이오 분야뿐만 아니라 에너지 합성, 담수화 분야에서도 주목받는 파급력 있는 연구”라고 설명했다.
제1저자인 서상진 UNIST 기계공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은 “이번 연구에서는 물질 전달 현상을 관측하기 위해서 형광신호를 내는 분자를 시료로 사용했지만, 약물, 신경전달 물질, DNA 조각, 퀀텀닷 같은 미세 물질에도 적용 가능한 기술”이라며 “다른 분야 연구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성능을 입증해 나갈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이번 연구는 다학제 분야의 저명한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2월 26일 온라인판에 게재되었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의 연구과제의 지원으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