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물질의 기능은 이 물질 표면의 미세구조가 결정한다. 미세구조 재료가 고가인데다 만들기도 어려워 한 번 만든 미세구조를 여러 번 변형해 쓰는 게 상용화 관건이다. 국내 연구진이 손으로도 쉽게 변형 가능한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
UNIST(총장 이용훈) 물리학과의 김대식 특훈교수팀은 메타물질에 압력을 가해 표면 미세구조를 변형시킬 수 있는 원천 기술을 확보했다. 미세구조에 얇은 틈을 만들어 압력으로 틈을 여닫는 방식이다. 손으로 가볍게 구부리기만 해도 변형이 가능하고 반복적인 변형에도 메타물질이 손상되지 않는다. 연구진은 이 기술로 다양한 전자기파의 특성을 조절하는 데 성공했다.
메타물질을 활용하면 전자기파(빛)의 주파수나 파장, 위상 등을 바꿀 수 있다. 복잡하고 무거운 부품 없이 전자기파를 이 물질에 쪼이는 것만으로 이러한 현상이 가능하다. 메타물질 표면을 채운 미세구조가 전자기파와 특정 상호작용을 하게 설계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세구조가 고정되면 작동하는 전자기파 종류(파장영역)의 종류나 조절 가능한 전자기파의 특성(주파수, 파장, 위상 등)이 제한되는 한계가 있어왔다.
김 교수팀이 개발한 기술은 메타물질 미세구조를 선형, 사각형 링 구조 등으로 다양하게 바꿀 수 있다. 미세구조에 낸 수십 나노미터(10-9m) 너비의 틈 덕분이다. 미세구조는 유연 플라스틱 기판 위에 제작됐으며 기판을 움직여 압력을 가하면 틈이 열리고 닫혀 미세구조 모양이 바뀐다. 미세구조 틈 넓이는 압력을 가하는 정도에 따라 피코미터(10-12m) 수준까지 조절할 수 있다. 터널링(tunneling)과 같은 양자 현상 조절도 가능하다.
해당 기술을 적용한 메타물질은 다양한 파장 영역의 전자기파(가시광선, 테라헤르츠파, 밀리미터파 등)의 주파수, 세기, 위상(파동의 모양), 편광 등 빛 고유 특성을 제어할 수 있다. 실험 결과 가시광선을 비롯한 대부분의 영역에서는 공진주파수가 2배 이상 바뀌었으며, 6G 통신주파수로 꼽히는 테라헤르츠 영역대에서 빛의 세기를 99.9% 이상 조절할 수 있었다. 빛의 위상과 편광 제어도 가능했다.
공동 교신저자인 이덕형 연구조교수는 “개발된 메타물질의 공진주파수 특성을 쓰면 혈당변화측정, 바이러스 검사 등에 유리할 것” 이라고 내다놨다. 바이러스 표피의 단백질 같은 생체 분자는 고유의 진동수가 있는데 이 진동수를 메타물질의 공진주파수를 이용해 증폭하고 검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변 공진주파수의 경우 한 번에 검사 가능한 물질 종류가 다양해 질 수 있다.
김 교수는 “이 메타물질 변형 기술은 가시광선, 테라헤르츠영역 등 다양한 파장 영역대 전자기파의 특성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6G통신기술, 3D 홀로그램 기술 등에도 응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연구는 나노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저널 ‘나노 레터스’(Nano Letters)에 3월 12일자로 온라인 출판됐다. 연구수행은 한국연구재단(NRF)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UNIST, 서울대, 인천대, 서울과학기술대의 공동 연구로 수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