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에 맺힌 물방울 표면에서는 수많은 물 분자가 떠나는 동시에 들어오고 있다. 우리 눈에는 물방울이 점점 줄어드는 증발현상만 보이지만, 사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물 분자가 물방울로 들어오는 응결현상도 동시에 일어나는 셈이다. 그런데 최근 이 둘을 구별해 증발량과 응결량을 알 수 있는 관측법이 나왔다. 용액의 증발과 응결비를 알아낸 이번 연구는 용액 증발 속도나 증발되고 남은 입자 의 패턴이 중요한 페인트, 잉크 같은 액체 개발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UNIST(총장 이용훈) 물리학과 정준우 교수팀은 중성자빔으로 물방울을 떠나는 물과 공기 중에서 물방울로 유입되는 물을 구별해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중성자 빔으로 물방울 영상을 찍어 밝기(투과도)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유입된 물 분자와 떠난 물 분자 양을 알 수 있는 기법이다. 또 연구팀은 물방울을 비롯한 액체의 증발을 예측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 모델까지 만들었다.
연구진은 ‘중성자 현미경’으로 중수 물방울을 촬영하면 물방울의 밝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어둡게 변하는 현상을 이용했다. 중수는 물 분자의 수소가 동위원소인 중수소로 바뀐 물이다. 중성자 현미경의 광원인 중성자 입자는 중수와 경수(일반 물)에서 투과도가 달라, 경수의 이미지가 더 어둡게 나온다. 공기 중의 물 분자는 경수 분자이므로 물 분자가 유입될수록 촬영된 물방울의 밝기가 어두워진다. 이 밝기 변화와 물방울 작아지는 현상을 같이 분석하면 증발량과 응결량을 구분해 알 수 있다.
연구진은 위와 같은 분석법을 통해 수 밀리미터 크기의 물방울을 30% 정도의 습도를 가지는 공기 중에서 증발시키면, 10분 후에는 대략 20%가 외부에서 유입된 물로 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기존 기술인 적외선 분광학 기술을 이용해서도 같은 결과를 관찰할 수 있었으며, 연구진이 제안한 물방울 증발을 예측하는 이론 모델과도 일치했다.
제1저자인 임재관 UNIST 물리학과 박사과정 연구원은 “가시광선과 같은 전자기파를 쓰는 일반 현미경과 달리 중성자 현미경은 중성자 물질파를 쓰기 때문에 경수와 중수를 구분 가능할 수 있다는 데서 이 실험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물방울의 고해상도 중성자 이미징을 위해서는 스위스 폴 쉐러 연구소(Paul Scherrer Institut)의 중성자 현미경(Neutron Microscope)을 사용했다
정준우 교수는 “이번 연구 방법은 물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혼합물 용액의 증발과 응결의 관찰에 유용할 것”이라며 “코팅이나 프린팅과 같이 용액의 증발이 수반되는 다양한 현상을 이해할 수 있어 새로운 잉크나 페인트 개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셀(Cell)의 자매지인 ‘매터(Matter)’ 5월 12일자(현지시각)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연구수행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의 연구과제(기초연구실 지원사업), UNIST 우수연구 아이디어 발굴사업, 기초과학연구원 첨단연성물질 연구단, 스위스 폴 쉐러 연구소의 지원으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