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외선을 이용한 성분 분석 기술의 민감도를 백 배 이상 높일 수 있는 메타물질이 개발됐다. 검사대상에 포함된 물질의 특성 신호를 최대한 증폭시켜 검출이 쉽도록 돕는 원리다. 대량 제조가 가능하고 제조공정도 저렴한 다양한 생체분자와 유해물질 검출 등에 응용될 수 있을 전망이다.
UNIST(총장 이용훈)전기전자공학과 이종원 교수팀과 한국기계연구원(원장 박상진) 정주연 박사 연구팀은 빛(적외선)을 쪼여 샘플 성분을 분석하는 적외선 분광분석의 검출 신호를 키우는 메타물질을 개발했다. 메타물질은 표면에 빛 파장 길이보다 작은 초미세구조가 배열된 특수 기능성 물질이다. 초미세구조 디자인을 최적화해 기존 기술보다 3배 이상 향상된 신호 증폭 효과를 얻었다.
물질 분자가 적외선의 특정 주파수만을 흡수하는 특성(분자지문)을 활용하면 반사된 빛의 패턴을 읽어내 샘플에 포함된 물질 종류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검출하려는 물질이 샘플에 극미량 포함된 경우 검출 신호인 빛 세기차가 거의 없어 읽어내기 힘들다. 세기가 1인 빛을 단일분자층에 쪼였을 때 0.003밖에 흡수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개발된 메타물질을 쓰면 단일분자층의 중적외선 흡수를 0.36(반사차이 또는 흡수차이 36%)까지 끌어 올릴 수 있다. 이는 메타물질이 없을 때 보다 120배 이상 향상된 성능(적외선반사흡수분광법 기준)이며, 메타물질 기반 기존 기술과 비교해도 3배 이상 향상된 것이다. 개발된 기술을 검증하는 실험에는 ODT(1-octadecanethiol) 물질 분자를 검출 분자 샘플로 썼다.
이 기술은 메타물질 표면 미세구조가 빛을 에너지를 모았다가(흡수) 이를 한 번에 분자에 쏘아줘, 분자가 흡수하는 빛의 양을 늘리는 원리인 근접장 강화 효과를 쓴다. 연구팀은 근접장 세기는 더 강화하고, 검출 분자가 근접장에 최대한 노출되는 미세구조를 설계해 검출신호 증폭 효과를 더 키웠다.
미세구조는 금속-절연체-금속 순서대로 쌓인 십자모양을 이룬다. 가운데 절연체의 두께가 10 나노미터(nm, 10-9m)로 얇아 상부 금속층과 하부 금속층 사이에서 더 강한 근접장 효과가 생긴다. 또 절연체만 안쪽으로 깎아내 만든 수직 갭 구조(금속 층간의 간격)를 통해 검출 분자가 근접장에 최대한 노출될 수 있도록 했다. 절연체가 깎여 들어간 공간으로 분자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황인용 UNIST 전기전자공학과 연구원은 “이번에 개발된 메타물질은 2.8nm(나노미터) 두께의 단일분자층 검출 실험에서 36%의 반사차이라는 기록적인 검출 신호를 얻었다”며 “단일분자층 검출 실험에서 최고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개발된 메타물질은 대량 제조가 쉽고, 제조 공정도 저렴하다. 기존 메타물질은 표면에 미세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고가의 고해상도 빔 리소그래피가 필요했으나 이번에 개발된 메타물질은 간단한 나노 임프린트(imprint) 공법과 건식 식각 공정을 써 제조할 수 있다.
한국기계연구원 정주연 박사는 “금속-절연체-금속 순으로 얇게 적층한 뒤, 나노 임프린트 공법으로 위에 쌓인 금속과 절연체를 원하는 모양으로 뜯어낼 수 있다”며 “여기에 절연체를 깎는 건식 식각 공법을 더해 미세구조가 배열된 메타물질을 대량으로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종원 교수는 “수직 방향의 갭 구조를 만들어 근접장 세기 강화와 근접장 노출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 최초의 연구”라며 “적외선으로 생체분자, 유해물질, 가스 등을 검출하는 센서 기술에 광범위 하게 응용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와일리(Wiley)에서 출판하는 세계적인 학술지인 스몰 메소드(small methods)에 5월 13일자로 공개돼 출판을 앞두고 있다. 연구 수행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원하는 글로벌프론티어 파동에너지 극한제어 연구단, 한국 연구재단 나노소재기술개발 및 민군겸용기술개발 사업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