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방역을 위해 교육받을 권리와 경제적 이익이 침해되더라도 학교와 상업시설을 닫는 것이 우선일까? 우리나라에서 만든 마스크는 우리나라 사람들만을 위해 비축해야 할까? 아니면 마스크가 절실하게 더 필요한 다른 국가에 나눠줘야 할까?
이러한 도덕적 딜레마 상황에서 정치 지도자가 어떤 선택을 내리는지가 지도자의 신뢰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22개국, 약 24,000명의 일반인으로 대상으로 이 실험결과에 따르면, 국민들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대표되는 공리주의적 가치는 우선시 하면서도 도구적 희생(instrumental harm)을 배제하는 지도자를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구적 희생이란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소수의 권익을 침해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 연구는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정동일 교수가 참여했으며, 저명 뇌신경과학자인 美 예일대학교 심리학과 몰리 크로켓(Molly Crockett) 교수가 주도했다. 연구결과는 네이처 자매지인 네이처 인간 행동(Nature Human Behaviour)지에 7월 1일자로 게재 됐다.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공리주의적 선택을 하는 개인은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유한한 자원을 배분하는 역할을 맡는 정치 지도자에 대해서는 다른 잣대로 판단하기도 한다. 이는 가상의 도덕적 딜레마를 상황을 가정한 다른 연구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연구팀은 이러한 정치 지도자의 도덕적 결정에 대한 일반적인 선호가 코로나19 유행 같은 특수 상황에서도 관찰되는지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특히 이번 연구는 주로 서구문화권에서 이뤄진 기존 연구와 달리 서로 다른 정치·사회·문화적 배경을 지닌 다양한 국가에서 동시에 수행됐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를 위해 22개국, 37명 연구진이 참여한 대규모 국제공동연구팀이 꾸려졌다. 국내에서는 의사결정 연구 전문가인 정동일 교수 외에도 도덕적 판단 연구 전문가인 부산대 심리학과 설선혜 교수가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담당했다.
연구에 따르면, 같은 공리주의적 선택이라 하더라도 다수의 위해 도구적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을 내리는 지도자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고르게 혜택을 누리게 하는 공평한 혜택을 강조하는 정치 지도자를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인공호흡기가 부족한 상황에서 ‘생존 가능성이 높은 젊은 사람에게만 우선적으로 인공호흡기를 보급해한다’는 주장을 하는 공리주의적 지도자보다는 ‘코로나 치료에 필요한 의약품을 세계 어느 곳이든 가장 필요한 곳에 먼저 보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지도자를 더 신뢰했다.
놀랍게도 이러한 결과는 연구 대상 된 22개국에서 유사하게 관찰됐다. 또 개인의 정치적 선호를 감안했을 때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또 가상의 모금된 금액을 관리 할 지도자를 뽑는 실험결과, 공평한 혜택을 지향하는 공리주의적 지도자를 도구적 희생을 강요하는 공리주의적 지도자 보다 더 지지했다. 이는 지도자에 대한 신뢰가 코로나19 방역정책과는 무관한 다른 정책 영역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 교수는 “이번 연구는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의사결정을 통해 향후 새로운 정책에 대한 국민의 협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위기 상황에서 사회 구성원의 신뢰를 높일 수 있는 공공 커뮤니케이션 정책 입안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한편, 2018년 1월에 UNIST에 부임한 정동일 교수는 인간의 가치평가와 의사결정 과정이 사회적 상황에서 어떤 행동으로 관찰되는지, 그리고 인간의 뇌에서 어떤 정보처리 과정을 거쳐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