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 덕산그룹 회장의 집무실에는 두 개의 글귀가 걸려있다. 하나는 ‘소재산업 입국(立國), 그 중심기업 덕산(德山)’이다. 수입에 의존하던 IT소재를 국산화하는 것이 산업 강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소재산업에 일관되게 집중해 온 덕산의 의지를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천지지대덕왈생(天地之大德曰生)’이다. 여기엔 ‘천지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새롭게 생겨나는 것, 즉 생성이고, 기업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고 이를 성장시켜나갈 때 그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이준호 회장의 경영철학을 담겨 있다.
이준호 회장은 울산 북구 효문동에서 태어났다. 울산에서 나고 자라, 울산에서 기업을 일군 자수성가 기업인이다. 덕산그룹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IT 소재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글로벌 강소기업들을 거느리고 있다.
이준호 회장은 “답습보다는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발전시키고, 선각자 정신으로 미래발전인자를 끊임없이 찾은 것이 오늘의 덕산그룹을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혁신’을 향해 쉼 없이 달려온 결과라는 것이다.
이 회장은 부산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현대중공업 공채 1기로 입사해 사회로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로 회사를 옮겼다가, 1982년 37세의 나이로 덕산그룹의 모체가 된 덕산산업을 창업했다. 항상 높은 곳을 바라보고 도전하는 ‘향상지심(向上之心)’을 품었기에,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사업에 나선 것이었다.
국내 유일의 융용 알루미늄·아연 도금업체로 출발한 덕산산업이 외환위기 이후 경영난에 빠졌을 때, 이준호 회장의 선택은 ‘혁신’이었다. 중화학공업 회사들이 중심이던 울산에 ‘반도체 소재’를 생산하는 최초의 공장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1999년 설립한 ‘덕산하이메탈’이 그 주인공이다.
당시 반도체 패키징 소재는 일본이 독점하고 있는 분야였다. 과감한 도전에 시련도 많았다. 개발 초기 불량품이 쏟아지고, 생산량도 나오지 않아 핵심인력이 유출되는 등 어려움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은 2002년 찾아온 후두암으로 6개월 간 병마와 싸우는 개인적 어려움도 겪었다.
전 재산을 투자한 연구개발, 수년간의 어려운 시간 끝에 이 회장은 결국 반도체 패키징의 핵심소재 ‘솔더볼’을 독자개발에 성공했고, 회사를 성장 궤도에 올려놓았다. 현재 덕산하이메탈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전 세계 반도체 기업에 소재를 납품하는 연 매출 500억 원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다. 국내 1위, 세계 2위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는 강소기업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후로도 덕산그룹은 차세대 디스플레이 소재 등에 도전해 성장을 이어왔다. 모바일 디스플레이 소재 분야에서도 덕산은 세계시장 점유율 1위에 올라있다. 덕산네오룩스, 덕산테코피아, DS미안마, 덕산넵코어스 등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거나 인수하면서 사업 영역은 지속적으로 넓어졌다. 덕산그룹은 현재 9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그룹 전체 매출은 연간 3,000억 원에 이른다.
또한 이준호 회장은 ‘인재 중심’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인재육성에 꾸준히 투자해왔다. 덕산의 비전 달성을 위해 무엇보다 인재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온 것이다. 덕산그룹의 주요 3개사는 전체 인력 중 연구개발(R&D) 인력이 1/3을 차지할 정도다. 또한 개발인력에 과감한 인센티브를 시행해 인재들의 성장을 돕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2017년 ‘유하푸른재단’을 설립해 이공계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 기부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본인의 호 ‘유하(裕河)’를 딴 재단은 사재 20억 원을 출연해 설립한 것이다. 재단은 매년 장학생을 선발해 지원하는데, 현재까지 80명에 5억 6,000만 원의 장학금이 전달됐다. 장학생들에게는 여름, 겨울방학을 이용한 별도의 교육도 제공된다.
장학사업과 더불어 저소득층을 위한 기부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대한적십자사 특별회비 납부, 로타리클럽 장학금 기부, 아산병원 불우환자 지원을 위한 기부, 울산대학교병원 소아재활원 설립을 위한 기부에 적극 나섰다.
이준호 회장은 평소 정도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기업경영에서 어떤 편법도 용납하지 않는 소신을 펼쳐왔다. 성실한 납세의무 준수를 통해 국무총리 상을 수상하는 등 다수의 표창을 받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 또한 자본재 개발을 통해 산업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석탑산업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