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조건을 마음먹은 대로 통제할 수 있느냐는 인간 뇌와 행동에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습된 무기력이 대표적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경험이 반복되면 의욕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 조건이 타인의 행동이라면, 그리고 그 조건이 통제 가능하다면 뇌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까? 국제 공동연구진이 우리 뇌가 타인을 통제하는 방식에 대한 단서를 내놨다.
UNIST(총장 이용훈) 바이오메디컬공학과 정동일 교수는 ‘사회적 환경’에 속한 인간이 어떤 신경 기작을 이용해 의사결정을 내리는지를 뇌 과학적으로 밝히고, 이를 생명과학분야 국제학술지인 이라이프(eLife)에 게재했다. 이번 연구는 미국 마운트 시나이 아이칸 의과 대학(Icahn School of Medicine at Mount Sinai)의 나수정 박사, 샤오시 구(Xiaosi Gu) 교수 연구팀과 함께 했다.
정 교수팀은 인간이 끊임없이 타인과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사회적 환경에 놓여 있는 점에 주목해 이번 연구를 시작했다. 사회적 환경에서 인간이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통제력을 인지하고 이용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본 것이다.
실험에 따르면, 실험참가자들은 상대방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미치고 통제할 수 있음을 스스로 인지하고 이를 이용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의사결정을 한다. 이 과정에서 2수 앞을 내다보는 전향적 사고방식을 활용한다는 점이 새롭게 밝혀졌다. 전향적 사고는 체스나 바둑 등 게임에서 흔히 일어난다. 다음번 거래의 가치를 평가해 이를 현재 결정 반영하는 것인데, 이러한 사고방식이 사회적 상호작용, 즉 인간관계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또 이 때 뇌에서는 가치판단 영역이 활성화 된다는 사실도 이번 연구로 규명됐다.
연구팀은 새로운 실험 과제와 이를 해석하는 계산신경 모델을 디자인해 이와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48명의 실험참가자들은 자기공명영상 장치 속에서 두 개 유형의 팀원들과 최후통첩 게임 각각 40회씩 수행했다. 참가자들이 수행한 ‘최후통첩 게임’은 대표적 사회적 상호작용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팀원들은 실험참가자에게 돈을 나눠 갖는 제안을 하고 실험참가자가 이 제안이 불공평하다고 판단해 거절하면 팀원과 실험참가자 모두 0원을 받고 게임이 끝난다. A팀은 실험참가자가 제안을 거절하면 그 다음 게임에서 제시 금액을 늘리고, 이전 제안을 수락하면 제시금액을 줄이는 반면 B팀 제시 금액은 실험참가자의 제안 수락 여부에 영향 받지 않고 무작위로 주어진다. 즉 실험참가자는 A팀에만 사회적 통제력을 행사할 수 상황이다. 참가자들은 사전에 이 사실을 알지 못한다.
실험결과, 실험참가자들이 획득한 금액은 사회적으로 통제 가능한 A팀과 게임을 했을 때 더 높았다. 이는 실험 참가자들이 스스로 통제 가능성을 인지하고 이를 극대화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추가적으로 진행한 1342명에 대한 온라인 실험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일관되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계산신경 모델링 기법을 이용해 실험참가자들이 미래에 일어날 상호작용의 가치까지 생각하는 전향적 사고(forward thinking)를 통해 이러한 의사 결정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실험참가자들이 2수, 3수, 혹은 4수 앞을 내다보는 가치평가를 할 것이라 가정한 모델들이 현재의 가치만 이용하거나 한 수 앞만 내다보는 가치평가 과정을 가정하는 모델들보다 실제 실험참가자들의 행동을 더 잘 설명했다.
이는 뇌 활성부위를 보는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촬영 결과로도 뒷받침 됐다. 계산신경 모델의 정보처리과정 과정과 뇌 영상 데이터를 비교 분석한 결과 의사 결정 과정에서 복내측전전두엽 영역이 현재 가치뿐만 아니라 미래 상호작용에 대한 가치까지 계산해 추척함을 확인한 것이다. 복내측전전두엽은 가치판단 영역으로 알려진 영역이다.
정동일 교수는 “이번 연구로 인간 관계에서도 전략적 사고가 적용된다는 사실을 뇌 과학적으로 입증했다”며 “후속 연구를 통해 복내측전전두엽의 전략적 사고 기능 상실이 조현병 등과 같은 정신질환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조현병의 특징 중 하나인 과대망상은 ‘본인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