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젯 프린터로 배터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종이 위에 출력한 글씨나 그림 자체가 전원이 되는 최초의 사례다. 이 기술의 등장으로 딱딱한 형태에서 벗어난 유연하고 다양한 배터리 디자인이 가능해졌다. 앞으로 등장할 입는 전자기기는 물론 각종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s) 기기에도 크게 활용될 전망이다.
이상영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팀은 일반 잉크젯 프린터를 이용해 문서를 출력하듯 전지(battery)를 제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출력된 전지는 종이 문서와 비슷하며, 컴퓨터로 디자인한 이미지 그대로 전지를 구현할 수 있다.
이상영 교수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잉크젯 프린터와 A4 종이를 이용해 전지를 제조한 획기적인 사례”라며 “기존 전지에서는 실현시키기 어려운 디자인을 가능하게 한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을 위해 연구진은 전지의 모든 구성요소를 잉크 형태로 제조하고, 점도를 잉크젯 프린팅이 가능하도록 조절했다. 종이 위에서 잉크가 번지거나 이탈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나노 크기의 셀룰로오스를 활용했다. 전지 재료를 인쇄하기 전에 종이 표면에 셀룰로오스 소재를 먼저 뿌려 번짐을 막은 것이다.
제1저자로 논문에 참여한 최근호 UNIST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은 “은 나노입자와 탄소나노튜브 등을 도입해 전지 특성을 높이고, 열에도 강한 전해질을 적용했다”며 “개발된 공정을 최적화하고 다양한 소재를 개발하면 차세대 전지는 물론 마이크로 규모의 전지도 잉크젯 프린팅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교수팀이 개발한 전지는 슈퍼커패시터(supercapacitors) 거동을 보이며, 1만 회 충‧방전을 반복해도 용량이 줄지 않았고, 150℃ 고온에서도 전지 특성이 그대로 유지됐다. 또 1000회 구부려도 전지 성능 변화가 없었다. 특히 잉크젯 프린팅 공정상, 마치 그림을 그리듯 전지를 직렬 혹은 병렬로 연결시킬 수 있어 전지 전압 및 용량을 쉽게 제어할 수 있다.
이번 기술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컴퓨터로 디자인한 모든 글자나 그림 모양을 전지 형태로 출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이 기술을 종이 지도와 유리컵에 적용하는 데 성공했다. 한반도 지도 형태로 전지를 출력해 LED 램프를 켜고, 물의 온도에 따라 다른 색깔의 등불을 켜는 유리컵도 만든 것이다.
▲잉크젯 프린터로 만든 배터리를 부착한 컵이 물의 온도를 인식해 LED 전구를 켜는 모습
이상영 교수는 “컴퓨터로 디자인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이미지를 전지로 구현하는 이번 기술은 사물인터넷용 전원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지금껏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개념의 전지 디자인과 제조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향후 플렉서블 전지 분야의 차별화된 기술적 토대 확보를 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중견연구자(도약)지원사업’의 지원으로 진행됐다. 연구 성과는 ‘에너지 및 환경 과학(Energy & Environmental Science)지’ 6월 22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으며, 표지논문으로도 출판될 예정이다. 에너지 및 환경 과학지는 영국왕립화학회(Royal Society of Chemistry)에 의해 발행되는 세계적인 권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