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UNIST 캠퍼스 인근에는 사연리라는 마을이 있다. 이름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UNIST 캠퍼스에는 다양한 사연이 존재한다.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오는 전설과 유래담을 생각하며 UNIST에 숨은 사연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사연은 경숙옹주 태실(胎室)과 비(碑). 태실은 왕이나 왕실 자손의 태를 모시는 작은 돌방을 말한다. 예로부터 왕실에서는 왕실의 번영과 왕실자손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전국에 이름난 산을 찾아 태실을 만들고 태를 묻었고, 이러한 산을 태봉산이라 하며 태비는 태실 앞에 세운 비석을 말한다. 왕실의 태실과 관련된 문화재는 울산에 하나뿐이다. 태실의 주인공은 조선 9대 임금인 성종의 딸인 경숙옹주로 추정되는데, 중전에게서 난 딸은 공주이고 후궁이 낳으면 옹주라 했다. 이러한 신성한 기운을 받은 태봉산의 필봉은 UNIST 도서관과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 그러다 보니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태봉의 정기를 받고 공부하고, 또 태봉을 바라보며 전 캠퍼스를 거니는데, 공부를 잘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두 번째 사연은 가막못과 아홉 개의 이름 없는 다리이다. UNIST의 연못은 가막못이라고 불리는데, 유례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다수설은 가마솥 모양을 닮은 가마골에서 유래했다는 설, 소수설은 까마귀가 도래하는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는 설, 못의 토질이 검은데서 유래했다는 설 등 많다. 하지만 이 가막못에는 진짜 UNIST만의 사연이 있다. 바로 9개의 이름없는 다리가 그것이다. 일부러 다리 이름을 붙이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노벨상 수상자를 앞으로 최소 9명은 배출해 다리에 이름을 하나씩 붙이겠다는 UNIST의 의지를 엿볼 수 있고, 이 더운 여름 많은 과학자들이 여전히 연구에 매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 번째 사연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최부자와 쏙 빼닮은 UNIST. UNIST 뒤편 산기슭에 정무공 최진립 장군 묘가 있는데, 정무공은 경주 최부자 가문을 일으킨 인물이기도 하고 풍수가들은 이 묘역을 ‘최부자 부의 시발점’이라고 말한다. 최진립 장군은 정유재란때 서생포 전투 등에서 공을 세웠고 병자호란때 전사했다. 당시 나라에서 국풍까지 보내 묘터를 물색해 국장으로 하였으니 이 자리는 당연히 명당이라고 할만하다. 최부자가 300여년 부와 명예를 지켜 온 비결을 곱씹어 보면 남에게 베푸는 것에 인색하지 않고 혼자 잘사는 것보다 함께 더불어 잘사는 삶을 추구하는 공존과 상생의 정신을 잘 실천하였기 때문이라고 회자된다. 이 묘역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면 UNIST가 한눈에 들어온다.
인류의 삶에 공헌하는 최고의 연구기관을 표방하는 UNIST도 마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최부자처럼 가진 것(연구 결과물)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 나누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9월의 하늘은 높고 맑다. 많은 사람들은 가을이 어떻게 왔다 가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없이 사는 중이다. 이럴 때 다양한 사연이 존재하고, 낭만과 열정이 가득한 UNIST 캠퍼스를 방문하는 것이 어떨까?
이승억 UNIST 상임감사 본보 14기 독자위원
<본 칼럼은 2016년 9월 6일 경상일보 19면에 ‘[독자위원칼럼]사연이 가득한 UNIST를 소개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