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를 구할 수 없다면 지역이든 국가든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미국 워싱턴 대학은 세계인구가 2064년 97억명을 정점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인류 30만년 역사에서 역병이나 재해 등으로 인한 일시적인 인구감소를 제외하면 처음이다. 인구증가 시대의 성장공식과 인구감소 시대의 성장공식이 같을 수 없다.
저소득 인구증가 국가에서 고소득 인구감소 국가로 생산가능인구가 이동하는 글로벌 흐름에 제동이 걸리는 것은 시간의 문제다. 앞으로 벌어지는 전쟁은 인구 빼앗기로 흐를지 모른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조차 러시아의 인구감소가 한 요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외국인 노동자를 구하려는 국가는 지금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출혈 경쟁을 불사해야 한다. 반대로 외국인 노동자는 ‘갑’이 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국가를 놓고 쇼핑할 것이다. 그 사이 저소득 국가가 본격적인 성장 궤도를 올라타면 고소득 국가로의 노동 이동은 결국 종말을 맞이할 공산이 크다.
한국은 이미 인구감소 국가다. 외국인 노동자를 구할 수 없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면, 기존의 성장공식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성장률에서 인구변화율을 빼면 삶의 질(質)이라는 공식이 이를 말해준다.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다면 인구가 감소할 때 삶의 질은 순간적으로 향상된다. 문제는 성장률이 인구감소율보다 더 빨리 추락하는 경우다. 이때는 삶의 질 악화가 불가피하다.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다. 인구가 줄어드는 속도보다 1인당 생산성을 더 빠른 속도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의 등장은 시대적 관점에서 보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AI발(發) ‘신(新)생산성 혁명’의 성패 여부가 지역이든 국가든 그 운명을 갈라놓을 것이다.
한국은, 그리고 산업도시 울산은 이에 대비하고 있는가? AI 기술혁신과 기술확산 사이에는 갭(gap)이 있다. 처음에는 생산성이 하락하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서야 생산성이 올라가는, 소위 ‘J-커브’ 현상은 그런 갭의 결과다. 사람이 얼마나 빨리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크게 보면 AI 인재는 개발과 활용으로 나뉜다. AI 기술을 좌우하는 세계 인재 2000명 가운데 한국인은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있다. 그렇다고 좌절할 이유는 없다. AI 고급인재 양성은 UNIST 등 정부가 지정한 인공지능대학원이 분발하면 된다. 더 시급한 과제는 당장 산업현장에서 생산성과 씨름하는 기술자, 엔지니어를 어떻게 산업AI 인재로 전환하느냐다.
울산에는 울산시와 UNIST가 손잡고 이미 시작한 ‘노바투스 아카데미아’가 있다. UNIST 인공지능대학원 교수가 기업이 직면한 프로젝트를 놓고 산업현장 인력과 함께 AI로 문제를 해결하는 16주 단기과정이다. 이른바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이다. ‘혁신’과 ‘변혁’을 의미하는 노바투스라는 이름답게 지난 몇 년간 쌓인 성과는 독보적이라고 할 정도다. 수요 예측, 유지·보수, 공정 최적화, 품질관리 등 수많은 성공 사례는 그 자체로 산업AI의 베스트 프랙티스다.
실제 성과가 눈앞에 나타나자 중소기업 CEO가 AI를 보는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CEO를 대상으로 한 노바투스 AI 최고위과정이 최근 출범한 계기다. 노바투스가 입소문을 타자 이번에는 산업AI 석사과정을 희망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에 부응해 노바투스 대학원이 올해 가을학기부터 문을 연다. 울산 산업제조 중소기업의 AI 전환을 위한 UNIST 노바투스의 꿈이 완성되고 있다.
울산의 노바투스는 부산, 경남으로 확장 중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노바투스 프로그램을 직접 확인하고 싶다며 울산중기청과 함께 UNIST를 찾아왔다. 정부가 구상해온 중기현장 AI인재 양성모델이 몇 년 전부터 울산에서 실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산업AI의 최고 솔루션은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현장의 인재다. 기술자, 엔지니어가 모두 AI 인재로 바뀌는 날, 울산은 산업AI에 관한 한 세계 최대 인재도시이자 최고 R&D도시로 변해 있을 것이다. 글로벌 산업AI 허브가 울산의 미래다.
<본 칼럼은 2025년 6월 10일 경상일보 “[안현실칼럼]노바투스의 꿈, ‘산업현장을 AI 학교로’”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