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하면 디테일해진다. 좋아하는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고 취향을 알기 위해 상대방의 행동부터 모습, 옷차림, 말투, 얼굴 표정까지 세밀하게 관찰하고, 함께 식사를 하며, 술도 마신다. 파악된 취향을 토대로 좋아하는 선물을 하기도 하면서 그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에 꼭 필요한 것이 바로 깨알 같은 디테일이다. 그러므로 디테일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이 진심일 때, 진정성이 보인다.
흔한 표현으로 명품의 성립 조건은 스토리가 있어야 하고 역사가 필요하고 어떤 집요함을 담은 품질이 있어야 하고 등등이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기본요소는 디테일이다. 그리고 그 디테일은 진정성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패션브랜드라면 바느질만 수십년장인이 한땀한땀 만들어낸 스티칭이 있고, 자동차라면 디자이너가 몇 년에 걸쳐 아주 작은 부분까지 스타일을 다듬고, 멋진 색상과 소재로 마감한 디테일이 있다. 그리고 패션이던 자동차던 그런 디테일은 해당 작업을 사랑하는 진정성을 갖춘 전문가의 실력이자 결과물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어떤 과목이건 지식의 축적과 깨달음, 배움의 재미가 생겨나서 디테일을 수반하는 소위 열공(?)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은 공부를 잘 할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공부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과학, 공학, 디자인 연구도 궤를 같이 한다.
대상을 끊임없이 파고들어 아주 작은 하나하나까지 규명하고 수식을 완성하고, 그것들을 합쳐 하나의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것에는 무한에 가까운 노력이 필요하다. 연구자의 노력은 진정성에 담보하고 있는 것일 수밖에 없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데, 어떻게 디테일을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 안될 일이다.
필자는 요즘 디제잉을 배우고 있다. 좋아하는 음악들을 선곡하고 편집해서 듣는 사람들의 기분을 조종하는 매력(?)에 푹 빠져서 수개월째 레슨과 열공 중이다. 배우기 전에는 디제잉이 선곡감각과 컨트롤러를 조작하는 요령만 익히면 쉽게 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레슨을 시작하니 이건 보통 어려운 분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 곡의 비트를 이전 곡에 맞추고, 선곡한 곡의 어떤 부분을 겹치게 만들고 덜어낼 것인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물론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살피며 나의 의도대로 분위기를 연출하도록프로그램하는 것은 정말이지, 필자의 연구영역 ‘디자인’보다 어려우면 어렵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배우기 전에 쉬워 보였던 것은 필자가 디제잉의 밑도 끝도 없는 디테일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그냥 가벼운 흥미정도로 시작해서는 중도포기밖에 안되는 분야가 디제잉이 아닌가 한다. 다시 말하면 좋아하지 않으면, 즐기지 않으면 그 디테일을 절대 득할 수 없다. 진정성이다.
이와 같이 세상 어떤 일이라도, 저마다의 깊이가 있고, 디테일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디테일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진정성에 기반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누군가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사소한 디테일에서 어긋나 사이가 멀어지고, 패션과 자동차 트렌드 속 작은 디테일을 캐치하지 못하면 곧 퇴물이다. 공부나 연구에서 디테일을 잘못 알고 처리하는 실수로 큰 낭패를 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분명히 비슷한 곡들로 디제잉을 하는데도 어떤 디제이의 디제잉에는 사람들이 계속 흥을 내고, 어떤 디제이의 디제잉에는 쉽게 흥을 내지 못하고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본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지만 심각하게 중요한, 디테일을 모두 캐치하고 다룰 줄 아는 사람의 경지가 바로 전문가다. 무수한 노력의 반복을 통해 획득한 디테일이 전문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필자의 시론은 우리가 잘 모르거나 조금 알거나 심지어 쉬워 보이는 분야, 세상 그 어떤 일이라도 디테일을 모른다면, 전문가를 제발 믿어보시라이다. 디테일과 진정성과 전문가는 말장난으로도, 다수결이나 특정인의 지시, 인기에 영합하는 의사결정에 의해서도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라면 끓이기부터 각종 연구개발프로젝트, 이삿짐 싸는 요령부터 미래를 대비하는 국가의 정책결정까지.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융합전문대학원 교수
<본 칼럼은 2018년 11월 9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디테일의 의미, 진정성과 전문가’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