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운전을 하다보면, 속도의 차이로 인해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신호등에 걸려 정차하고 있을 때 옆에 있는 버스가 앞으로 속도를 내는 경우, 순간 자신의 차가 뒤로 후진한다고 느껴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는 경우가 있다. 곧 깨닫는 것은, 내 차는 멈추어 있고, 옆의 버스가 앞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빨리 달리는 화물 트럭을 자세히 살펴보려면, 같은 속도로 달리면 된다.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다면, 달리는 트럭의 옆면에 붙은 미세한 진흙도, 뒷면에 붙어있는 트럭 회사의 로고와 전화번호까지도 구석구석 살필 수 있다.
속도는 야구에서도 중요하다. 야구에서 투수가 공을 던지는 속도는 투수의 실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이다. 이때 빠른 볼만 던지기보다는 직구와 느린 변화구 등의 속도변화를 통해 타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능력이 중요하다. 빠른 직구를 기다리는 타자는 느린 커브에 헛스윙을 하거나, 방망이를 휘두르지 못하고 루킹 삼진을 당하기 십상이다. 투수의 완급 조절 능력이 차이를 만든다.
자동차들의 속도 차이는 착시경험을 일으키고, 야구공의 속도 변화는 투수의 능력이 될 수 있듯, 우리는 속도라는 관점으로 우리의 사회 현상도 손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이론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속도에 관한 것이 아니었는가!
예를 들어, 몇년 전 화제가 되었던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에서 속도는 경제사회를 설명하는 핵심 단어라고 볼 수 있다. 피케티가 바라보는 경제사회는 ‘자본이 돈을 버는 속도’와 ‘노동이 돈을 버는 속도’의 차이를 통해 분석될 수 있는 세상이었다. 돈을 재생산해내는 속도의 차이로 인해 부자들의 부의 축적 속도가 가난한자들의 부의 축적 속도 보다 더 빨라지게 되고, 이로 인한 소득 불평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자본의 다양한 규제는 이러한 속도 차이를 좁히고 조절해 나가는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역사학자 유발하라리의 책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에서도 속도라는 개념은 인류 문명의 장구한 역사와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살펴보는 틀로 사용됐다. 인간의 육체적 진화과정의 속도는 우리가 관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느리게 진행되고 있는 반면, 인류 역사는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고대의 유전자 명령을 따르는 인간의 육체적 욕망과 욕구가 현대 사회에서 요구되는 인간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로 인해 생겨나는 다양한 사건과 현상들이 과거의 역사였다. 이에 더하여, 유발 하라리는 미래에 직면한 하나의 가능성으로 기술혁명과 생명공학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육체적, 인지적 진화의 속도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속도’라는 것은 기업의 경쟁우위를 설명하는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제2의 기계시대’의 저자 에릭 브린욜프슨은 1890년대에 전기가 발명되어 전기모터가 증기기관을 대체하였지만, 전기모터라는 새로운 기술은 공장의 생산성을 거의 증가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증기기관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공장배치가 전기모터의 등장에도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새로운 공장의 변화는 30년이나 늦은 속도로 진행되어, 새로운 조직구조와 프로세스를 바꾸고 나서야 전기모터의 기술적 이점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IoT와 센서 등의 데이터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빠른 속도로 생성되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 속도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으며,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지 오래이다. 인간이 제어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유전과 진화 속도까지도 조절하려고 하는 시대가 아닌가! 울산 산업과 경제는 어느 속도로 변화되고 있을까? 울산은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혁신기술의 변화를 빠른 속도로 받아들이고자 노력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 조직 구조와 업무프로세스, 일하는 방식들은 느린 속도로 변하는 듯이 보인다. 울산 기업들 중에는 이러한 속도의 차이로 피로감과 무기력이 자리 잡는 경우도 있다. 이제는 한번쯤 우리의 속도를 점검하고 울산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완급조절 능력을 키워야 할 것 같다.
홍운기 UNIST 경영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9년 7월 3일 울산매일신문 19면 ‘[경제칼럼] 속도의 차이와 울산의 속도’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