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팔이 컵을 하나 꺼내 들어 제빙기 앞에 내밀자 시원한 얼음이 한 움큼 쏟아진다. 이어서 커피머신으로 컵을 옮기자 이번엔 에스프레소가 담겼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완성된 것. 로봇카페 ‘로비스’를 개발, 운영하는 박기범 대표와 김민수 대표는 로봇 서비스 시대를 성큼 앞당기고 있다.
UNIST 스포츠센터 지하 1층에 설치된 로비스 카페는 가로, 세로 2m 남짓밖에 안 되지만 커피머신, 제빙기, 시럽머신, 온수기, 우유 냉장고 등 음료 제조에 필요한 설비들은 모두 갖췄다. 하지만 바리스타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절도 있게 작동하는 로봇 팔이 바리스타를 대신하는 신통방통한 무인 로봇카페이기 때문이다.
석사과정에서 제어설계공학을 전공하며 스마트팩토리연구실에 몸담았던 박기범 대표(기계공학과 12)는 로봇카페도 일종의 스마트팩토리라고 설명했다. 각종 설비가 신호를 주고받으며 전 생산과정을 자동화 시스템으로 움직이게 하는 원리가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공을 접목한 창업 기회를 찾던 박기범 대표에게 로봇카페는 애타게 찾던 최적의 사업 아이템이었던 셈.
“원래 창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남이 시켜서 하는 것보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게 훨씬 재미있거든요. 카페는 시장규모가 크고 진입장벽이 낮아 한번 도전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디어 하나로 시작된 무모한 도전
그야말로 아이디어 하나만 믿고 호기롭게 창업을 결심한 박기범 대표는 사업 파트너부터 물색했다. 때마침 학부 동기 김민수 대표(기계공학과 12)가 관심을 보였다.
“취업을 준비하는 다른 동기들과 달리 창업을 생각하던 차에 박 대표의 제안을 받고 바로 합류했습니다.”
그 길로 김민수 대표는 휴학계를 내고 박기범 대표와 6개월 동안 철야를 밥 먹듯 하며 시스템 개발에 돌입했다. 연구와 동시에 창업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창업지원기관들에 사업계획서를 내밀었다는 박기범 대표.
“당시 석사과정 중이었는데 연구실 동기들이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을 때, 저는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느라 바빴죠.”
그렇게 수십 곳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담했다. 한마디로 ‘이게 되겠냐’는 것. 젊은 공학도들의 비전을 미래의 꿈같은 이야기로만 치부했다. 실체도 없이 투자사들을 설득하려고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박기범 대표의 머릿속에는 이미 로드맵이 그려져 있었지만, 이상과 현실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더는 사업을 미룰 수 없었다. 마침 정부로부터 소정의 지원금을 받게 되었고 여기에 개인 자본금을 더해 박기범·김민수 대표는 드디어 2018년 9월 ‘로비스’라는 사명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로비스(Rovice)는 로봇(Robot)과 서비스(Service)를 결합한 말인데, 이들의 사업이 단지 로봇카페에 한정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즉, 로봇을 도입할 수 있는 서비스 분야라면 어디든 진출할 계획이다.
“작은 사무실부터 내고 본격적으로 각 머신들을 움직일 수 있는 통합 시스템을 개발했죠. 저는 시스템제어설계 쪽을 담당하고, 김 대표는 소비자가 사용할 애플리케이션과 서버를 구축했습니다.”
개교 기념식 때 ‘깜짝 스타’로 데뷔
뒤이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서 운영하는 창업성공패키지 사업화지원 청년창업사관학교에도 선정된 로비스는 일대일 창업코칭을 받으며 창업한 지 1년도 안 돼 시제품을 제작했다. 그 결과 지난 5월 열린 ‘UNIST 개교 10주년/설립 12주년 기념식’ 때 대학 성과 전시회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일반 소비자들에게 처음 선보였는데 매우 큰 호응을 얻었죠. 다들 ‘신기하다’, ‘재미있다’, ‘맛있다’며 좋아하더군요. 계속 도전해도 괜찮겠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박기범 대표는 전시회에 참여한 것은 로비스를 알릴 좋은 기회였다며 그 외에도 사무공간 지원, 스포츠센터 내 입주 등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준 UNIST 창업팀에 고마움을 표했다. 현재 스포츠센터에서 운영하는 로비스 카페는 일종의 테스트베드로, 시범운영을 위해 설치된 것이다. 시범운영 중인 카페는 보완점을 발견하고 개선하는 역할로 소프트웨어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한몫하고 있다.
이렇게 시스템 시안을 구축한 후 로봇 팔과 커피머신, 온수기 등을 갖춰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주자 투자자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김민수 대표는 청년창업아카데미에서 마지막으로 시제품을 발표했을 당시 심사위원들의 반응을 잊을 수 없다.
“입교 때는 사업계획서밖에 없었는데 마지막에 시제품을 보여주자 둘이서 4개월 만에 어떻게 이걸 다 만들었냐며 놀라워하더군요. 저희도 뿌듯했습니다.”
박기범 대표는 모두 대학원 시절 스마트팩토리연구실에서 단련한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제가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스마트팩토리연구실에 참여했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주도적으로 일하는 법을 배웠거든요. 게다가 제작업체들을 선정해 제품을 발주하고 생산하는 실무도 익혔습니다.”
언택트 쇼핑 시대, 서비스 로봇 시장을 열다
로비스 카페는 자판기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자판기 인허가를 받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설치할 수 있다. 또한 무인이기 때문에 24시간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 외식 및 유통업계에는 셀프 계산대 및 주문 키오스크를 설치한 매장이 늘고 있고, 4차 산업혁명 기술과 접목된 미국의 ‘아마존고’, 중국의 ‘타오카페’ 등 국내외 할 것 없이 무인스토어가 늘고 있다.
이는 직원과 접촉하지 않는 비대면 방식의 ‘언택트(Untact)’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자동화, 기계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로비스는 이런 시대변화에 발맞춰 내년부터 B2B 시장 위주로 본격적으로 로봇카페를 보급할 계획이다. 벌써 관심을 보이는 업체들이 여럿 있으며, 현재는 ‘톡톡팩토리 울산청년창업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공장에 입주해 양산화 순서를 밟고 있다.
“더욱 감성적인 느낌이 들도록 전반적인 카페 디자인을 변경할 계획입니다. 지금은 좀 공대 감성인 것 같아서요. 그리고 로봇 팔이 컵을 뺄 때 여러 잔이 한꺼번에 딸려 올라오는 경우가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 디펜서를 설치합니다. 처음 사용하는 이용자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음성안내를 적용하는 등 직관적인 UI로 수정할 예정입니다.”
더불어 공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카페 스테이션의 가로 폭을 줄이고, 로봇을 소형화시킬 계획이다. 또한 사업자가 스테이션을 더 손쉽게 유지, 보수할 수 있도록 출입구의 구조도 변경하려 한다. 막상 운영해보니 사소한 문제들도 속출하고 있지만 이러한 시행착오는 고스란히 로비스만의 노하우로 쌓여 경쟁력이 될 것이다.
“앞으로 단순노동은 로봇으로 대체돼 무인화가 급속도로 퍼질 것입니다. 로봇 서비스 시장이 활짝 열렸을 때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가 되도록 열심히 준비해야죠.”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여전히 밤샘을 마다하지 않는 박기범·김민수 대표. 농담인지 진담인지, 바리스타 로봇을 이을 다음 로봇은 닭꼬치 로봇이 될 수도 있다고 살짝 귀띔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