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화학상은 손상된 DNA가 복구되는 원리를 밝혀낸 세 명의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명경재 UNIST 생명과학부 특훈교수는 이들의 수상을 그 누구보다 반갑게 여겼다. 그 역시 DNA 복구 과정을 연구해 왔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 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대학교 세포생물학 시간에 처음 DNA 복구에 대해 들었어요. (사람의 생사가 달려 있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에 석사과정 때부터 이 분야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수한 염기 서열로 이뤄져 있는 DNA는 자외선과 발암물질 등에 의해 서열이 변형되는 등 손상을 입기 쉽다. 다행히 인체는 이런 손상을 복구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암으로 발전한다. 이를 알게 된 명 교수는 대학을 졸업한 뒤부터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DNA 복구 과정 연구에 매진해 왔다.
개인 맞춤형 항암제 개발에 도전!
한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줄곧 미국에서 연구한 명 교수는 지난해 UNIST 특훈교수 및 기초과학연구원(IBS) 산하 유전체항상성연구단장으로 부임했다. 연구단의 목표는 DNA 복구 과정을 다각도로 연구해 개인별 맞춤형 항암제를 개발하는 것이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가 세균 같은 원핵생물에서 DNA를 조작한 뒤 복구 메커니즘을 확인한 것이었다면, 명 교수팀은 실험쥐와 제브라피쉬처럼 사람에 더 가까운 진핵생물과 줄기세포 등에서 일어나는 DNA 복구 과정을 연구한다. 특히 제브라피쉬는 한 번에 수백 마리의 개체를 얻을 수 있어서 여덟 마리 안팎의 새끼를 낳는 실험쥐보다 연구에 유리하다. 2014년 말 한국에 돌아온 명 교수는 최근 사육시설을 완성하고 제브라피쉬를 도입했다.
명 교수팀은 이들을 활용해 미국국립보건원(NIH) 시절 진행하던 연구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NIH에서 명 교수는 DNA 복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생기는 암세포를 표적으로 하는 ‘개인 맞춤형 항암제’를 연구했다. 암세포의 DNA 복구를 방해해 사멸시키는 원리다. 할리우드 배우인 안젤리나 졸리는 유방암 유발 가능성이 70% 안팎인 ‘BRCA1 유전자 이상’이 발견돼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는데, 표적 치료가 가능해지면 굳이 유방을 절제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명 교수는 NIH 재직 시절 약 30만 개의 화합물을 분석해, 암세포의 DNA 복구 과정을 막아서 암세포를 죽이는 후보물질을 300개 정도로 압축했다. 그는 “특히 대장암과 유방암에 효과가 있는 물질을 찾았다”며 “향후 제브라피쉬와 실험쥐 등에서 이 물질이 암세포의 DNA 복구를 어떻게 방해하는지 연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새내기 연구자의 성장 돕는 징검다리를 꿈꾸며
명 교수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멘토’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그가 DNA 복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종신연구원 자리가 보장된 NIH를 떠나 UNIST에 올 결심을 하게 된 것도 멘토들이 그에게 줬던 영향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할 때 만난 멘토가 리차드 콜로드너(현재 UC샌디에이고 교수)예요.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의 업적 중 하나인 ‘DNA 불일치 복구’가 대장암의 발병 원인이라는 것을 처음 밝힌 분이죠. 연구를 할 때 가설을 세우고, 실험의 방향을 설정하는 부분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해 주셨어요. 후배 연구자들을 보면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데도 가설과 연구 방향 설정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 역시 그랬는데, 멘토를 통해서 많이 배울 수 있었죠. 저도 학생들에게 그런 역할을 해 주고 싶어서 UNIST에 오게 됐습니다.”
NIH에서는 데이비드 보다인 박사가 멘토가 돼줬다. 보다인 박사는 자신의 연구를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능력을 길러줬다. 당시 명 교수는 다른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명 교수의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보다인 박사는 명 교수의 연구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을 소개해서 소통 능력을 기를 수 있게 도왔고, 아침마다 명 교수와 만나서 자신의 연구 이야기를 들려줬다. 명 교수만을 위한 특별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준 셈이다.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부족한 부분을 고치고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멘토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멘토를 여럿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명 교수는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조언과 지도를 받아들였던 명 교수의 겸손함과 노력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엉뚱한 생각과 질문을 두려워 말자!
명 교수는 연구원들에게 자신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자주 찾아와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거나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라고 격려하는 편이다. 처음에는 엉뚱한 생각이라고 느꼈던 것이 나중에 좋은 아이디어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학생들과 자주 만나려고 노력한다.
최영준 과학동아 기자 | jxabbey@donga.com
<본 기사는 2015년 12월 ‘과학동아’에 ‘‘암세포 골라 잡는 ‘표적 기술’ 꿈꾼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