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잘나간다’는 학자를 만나면, 가끔은 삐딱한 마음이 든다. 과거의 성과에 취해 앞으로의 계획은 부실한 경우를 종종 보기 때문이다. 김건태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를 만나기 전에도 그런 마음이 조금은 있었다. 최근에 연달아 좋은 성과를 내서 연구 의욕도 조금 떨어져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정상적인 인터뷰라면 마지막쯤에 할 질문인, 앞으로의 계획을 먼저 물었다.
연구에 앞서 ‘친화력’ 키워
“구체적인 계획은 딱히 없습니다. 어떤 연구를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보다 더 중요한 건 교육입니다. 학생들을 잘 가르쳐서, 학생들이 잘 배우고 즐거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야망에 찬 학자라면 어려운 말을 써가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연구 분야나 상업화 등을 이야기하기 마련인데, 학생들과 한번 잘해보겠다는 대답은 낯설었다. 실제로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가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그가 추구하는 게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었다. 사적으로는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면서, 연구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사뭇 진지했다.
“새로운 학생이 오면 ‘실험실에 적응하는 게 먼저’라고 말해줍니다. 실험실이란 작은 사회에서 좋은 관계를 맺어, 아침에 일어났을 때 기분 좋게 실험실에 올 수 있어야 연구도 잘 하게 됩니다.”
김 교수는 연료전지의 촉매를 개발하는 과학자다. 촉매란 반응에 참여하는 물질 간의 효율을 높여주는 물질을 말한다. 효율이 중요한 공학에서 촉매가 필요하지 않은 곳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촉매를 연구하는 김 교수의 실험실은 다른 실험실과 공동 연구를 유달리 많이 진행한다. 이때 김 교수 실험실 학생들이 평소 갈고 닦은 친화력(?)은 공동 연구자와 좋은 관계를 맺고, 활발한 토론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김 교수가 2015년 11월에 학술지 ‘앙게반테 케미’에 발표한 논문은 같은 학과 송현곤 교수와 같이 연구한 결과다. 2014년 12월 ‘네이처 머티리얼스’에 발표한 결과는 신지영 동의대 교수 등과 함께 한 연구였다.
이런 연구들은 대개 재료에 강한 공동 연구팀이 연료전지의 음극과 양극에 쓸 새로운 재료를 개발하고, 김 교수가 효율 좋은 촉매를 만들어 전지를 연결해 효율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는 “뛰어난 공동 연구자들 덕분에 좋은 성과를 냈는데 내가 주목을 받아 쑥스럽다”고 밝혔다.
고분자 연료전지 다음은, 세라믹 연료전지
연료전지는 기본적으로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전기를 만든다. 현재는 크게 두 가지 재료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고분자 연료전지는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어 연료전지 자동차, 휴대용 전지 등에 사용되고 있다.
고분자 연료전지는 크기도 작고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도 반응한다. 상용화에 성공한 것도 이런 장점들 때문이다. 고분자 연료전지를 충전하기 위해서는 아주 순도가 높은 수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단점이 있다.
세라믹 연료전지는 크기도 크고 반응 온도도 높다. 온도가 높다 보니 연료전지 내부에서 불필요한 반응이 일어날 수 있어 아직까지는 안정성이 떨어진다. 순수한 수소 이외에 다른 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세라믹 연료전지의 장점이다.
김 교수가 2014년 개발한 세라믹 연료전지는 프로판(도시가스의 주요 성분)을 사용해 연료를 충전하는 방식이다. 그의 실험실 한켠에서는 도시가스 관을 끌어다 연료전지를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실험이 한창이었다. 김 교수는 “연료전지는 에너지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고효율 에너지원으로, 환경을 지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연구실 人사이드]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교수와 학생이 친하기 때문에 교수가 뭐든 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김건태 교수 실험실 학생들은 논문을 반드시 직접 써야 된다. 영어도 서툴고, 실험 결과를 보여주는 것도 서툰 학생들이 답답해서 보통은 지도교수가 이리저리 손을 대기 마련인데, 김 교수는 모든 것을 학생에게 맡긴다.
“자기가 직접 논문을 써봐야 어떤 연구를 한 것인지 비로소 알게 된다. 대신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자주 학생들이랑 만나 구성과 결과를 계속 토론한다.”
김건태 교수 실험실 학생들은 기계, 에너지, 생물, 고분자 등 배경이 다양하다. “이런 다양한 배경들이 연료전지 개발에 도움이 된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 중에서도특별히 유리한 것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기화학을 잘 하면 좋다”고 답했다.
송준섭 과학동아 기자 | joon@donga.com
<본 기사는 2016년 1월 ‘과학동아’에 ‘‘촉매’처럼 사람들을 이어주는 연구자”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