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창조과학부는 최근 수부 절단 장애인을 위해 ‘전자의수’를 만드는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고현협 UNSI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는 이 프로젝트에서 의수의 인공전자피부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최근 사람 손가락의 구조를 모방해 촉감은 물론 소리까지 느낄 수 있는 전자피부를 개발했다.
기자는 고현협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와 마주 앉자마자 최근 그가 개발한 전자피부가 기존의 전자피부와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촉각은 물론 소리와 냄새까지 감지할 수 있는 전자피부가 개발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전자피부는 수직으로 누르는 압력과 온도 등 ‘정적인 촉감’만 느낄 수 있었어요. 저희 연구팀이 만든 전자피부는 진동 같은 ‘동적인 촉감’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표면의 아주 미세한 거칠기를 알 수 있어요.”
지문과 마이크로 돔 구조 모방해 미세한 감촉 느껴
연구팀이 주목한 구조는 손의 지문과, 표피 속에 있는 미세 구조다. 손가락 지문은 물체를 집을 때 미끄럼을 방지할 뿐 아니라 미세한 질감을 파악하는 기능도 한다. 지문이 물체 표면의 미세한 돌기들과 만나면 진동 신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표피와 감각 수용기 사이에는 최대 지름이 수 마이크로미터(μm)에 불과한 반구(동) 모양 구조물들이 마치 모래시계처럼 서로 맞물려 있어서, 지문에서 만들어진 미세한 진동 신호를 증폭시킨다.
연구팀은 지문을 흉내 내 고분자 필름 표면을 올록볼록하게 만들고, 필름과 진동센서 사이엔 마이크로 크기의 반구 모양 구조를 만들어 넣었다. 그 결과 물방울이 떨어지거나 달팽이가 기어갈 때 생기는 미세한 압력, 공중에 울려 퍼지는 소리까지 감지할 수 있었다.
“기존의 전자피부는 옆으로 쓸리는 촉감은 알 수 없어요. 수직으로 누르는 힘만 감지할 수 있으니까요. 반면 우리가 개발한 전자피부를 여러 개 이어 붙이면 진동의 세기를 통해 촉감이 어느 부위에서 어느 방향으로 이어지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진짜 손가락처럼 느끼는 전자피부인 셈이죠.”
고 교수는 “절단 장애인을 위한 전자의수나 청각 장애인을 위한 음성인식기, 건강진단용 웨어러블 소자 등에 쓰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센서 부품 80%는 수입…신축성과 회로구현 등 난제도
아직 한계도 있다. 그가 개발한 전자피부는 유연하지만 신축성이 없다. “신체와 붙이면 생체신호를 더 정확하게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의료용 센서는 신체 부착형이 될 겁니다. 그러려면 소자가 휘어지고 늘어나게 만들어야 하는데, 특히 신축성 있게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대부분의 재료는 얇게 만들면 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자를 늘어나게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소자의 내부 구조를 특수하게 만들어야 한다.
얇은 전자피부 안에 각종 기기를 삽입해야 하는 것도 난제다. 고 교수는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바꿔주는 회로, 그 신호를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무선통신 기술, 그리고 베터리까지 모두 얇은 전자피부에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회로·통신을 연구하는 팀과 공동 연구를 계획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센서는 아직 부품의 70~8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요. 원천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사물인터넷이나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에는 거의 모든 분야에 센서가 필요해요. 자부심도 느끼지만, 하루빨리 센서를 연구하는 분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구실 人사이드] 독립적인 연구자로 거듭나야
고현협 교수는 학생들에게 독립심을 강조한다.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건 독립적인 연구자로 거듭난다는 뜻입니다. 지도교수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점을 발견해 해결할 수 있어야 하죠.”
실제로 고 교수는 학생들에게 큰 주제는 제시하지만, 세세한 실험 방법 등은 알면서도 알려주지 않을 때가 있다고 했다. 학생들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스스로 깨치기를 기다려주는 편이라고.
그는 “우리나라 학부 졸업생들은 수동적인 편”이라며 “스스로 독립적이라고 느끼는 학생들이 도전하면 연구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아영 과학동아 기자 | wooyoo@donga.com
<본 기사는 2016년 7월 ‘과학동아’에 “소리까지 듣는 피부를 아시나요?”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