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연료전지자동차 시장을 놓고 글로벌기업들의 경쟁이 뜨겁다. 현대자동차는 2013년 출시한 수소차 ‘투싼ix’의 가격을 최근 파격적으로 43.3% 낮췄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올해 초 수소차 ‘미라이’를 출시한 지 한 달 만에 1500대를 팔았다. 혼다, 벤츠다임러 등 세계 굴지의 자동차 회사들도 2016~2017년 새로운 수소차 출시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수소차 시대가 성큼 다가온 걸까.
수소차, 아직은 ‘그림의 떡’
“현재 사용하는 수소연료전지로는 가격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백금 촉매를 사용해야 하는데 너무 비싸거든요. 백금을 대신할 새로운 촉매가 수소차 시대를 여는 열쇠가 될 겁니다.” 주상훈 UNIST 에너지및화학공학부 교수는 현실적인 문제를 가장 먼저 진단했다. 수소차의 동력원인 수소연료전지는 수소와 산소를 결합해 에너지와 물을 만들어내는데 이때 반드시 촉매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상용화된 모든 연료전지엔 백금 촉매가 사용된다. 매장량이 제한된 백금의 가격은 1g 당 8만 원이 넘는다. 현대차가 수소차의 가격을 1억5000만 원에서 8500만 원으로 낮췄다고 하지만 가솔린이나 디젤을 사용하는 같은 모델의 가격(1955~2780만 원)에 비하면 여전히 3배 이상 비싼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탄소나노튜브로 가격 10분의 1
주 교수는 백금 대신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물질로 눈을 돌렸다. 그러다 우연히 탄소나노튜브에 이온성 액체를 입히고 열처리를 하면 질소나 황, 인과 같은 원소가 많이 들어있는 탄소층이 만들어져 촉매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새로운 ‘탄소 촉매’는 가격이 백금의 10분의 1인 데다, 아직 실험 단계지만 효율도 백금 촉매의 80%까지 따라 잡았다. 지금까지 개발된 비금속계 촉매 가운데 최고 성능이다. 탄소 촉매는 내구성이나 안전성도 좋다. 탄소 촉매로 연료전지를 만들면 백금 촉매보다 6배나 오래 쓸 수 있고, 합성 과정도 간단하다. 주 교수가 만든 탄소 촉매는 지난해 4월 화학분야 최고 학술지인 ‘앙게반테 케미’에 ‘가장 주목받는 논문’으로 소개됐다.
“상용화까지 앞으로 20년”
주 교수는 새로운 탄소 촉매가 연료전지에 실제로 적용되기까지, 20년이 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얼핏 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백금 촉매를 개발하기까지 50년이 걸린 것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주 교수는 “수소연료전지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기술”이라며 “새로운 촉매로 연료전지 시대를 앞당기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짬뽕’ 연구가 답
그동안 많은 과학자들이 백금을 대신할 새로운 촉매를 연구했지만 번번이 좌절했다. 이렇게 개발된 촉매들이 백금 촉매보다 효율이 10~100배 이상 낮았기 때문이다. 주 교수가 ‘탄소 촉매’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전공 분야를 넘나드는 융합연구 덕분이었다. 그는 박사과정 시절엔 다공성 탄소재료를 합성하는 연구를 했고 박사 이후에는 연료전지를 연구했다. 재료화학과 전기화학 두 분야를 ‘짬뽕’한 것이 성과를 낸 셈이다.
이 때문에 그가 이끄는 연구실에서도 항상 융합연구가 강조된다. 촉매 후보 물질을 잘 합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연료전지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연구실의 천재영 박사과정 학생은 “촉매와 관련된 여러 분야를 함께 공부하다보니 여러 과의 수업도 동시에 듣고 논문도 더 많이 읽는다”며 “힘은 들지만 연구 분야를 스스로 개척해 나간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이영혜 과학동아 기자 | yhlee@donga.com
<본 칼럼은 2015년 3월 과학동아에 ‘수소차에 딱! 저렴한 탄소촉매 만든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