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의 핵심 기술은 배터리다. 한 번 충전으로 얼마나 달릴 수 있는지가 전기자동차 성능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휴대전화 배터리 폭발 사건으로 배터리의 안전성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 전기자동차의 경우 휴대전화 배터리보다 1000배 이상 용량이 큰 배터리를 사용하기 때문에 배터리가 폭발할 경우 피해는 어마어마하게 늘어날 수 있다. 오래 가면서도 안전한 배터리는 없을까. 그 답을 전고체 배터리에서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전자기기에서 사용하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다른 배터리에 비해 같은 부피 또는 무게에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 하지만 리튬이온 배터리에 사용하는 유기계 액체전해질은 휘발성이 높고, 불에 잘 타서 폭발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안전한 전고체 배터리, 성능은 높여야
전고체 배터리는 불에 타지 않는 무기계 고체전해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안전성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100℃ 이상의 고온에서도 안전한 것은 물론, 오히려 고온에서 빠른 충전이 가능하다. 전고체 배터리는 극저온에서도 작동이 가능해, 저온에서 액체전해질이 얼어서 성능이 떨어지거나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단점도 극복할 수 있다.
장점이 많은 전고체 배터리지만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성능이다. 분말 형태의 고체전해질은 액체전해질처럼 전극으로 고루 스며들지 않는다. 전해질과 전극의 접촉이 원활하지 않으면 리튬이온의 이동이 어려워서 성능이 떨어진다.
정윤석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화학공학에서 찾았다. 용액에 잘 녹는 새로운 고체전해질을 개발해 전극의 활물질(에너지를 저장하는 물질)에 코팅했다. 고체전해질을 녹인 용액에 분말 형태의 활물질을 넣은 뒤 용매를 증발시키면, 활물질에 고체전해질 층이 균일하게 코팅되면서 접촉 면적이 늘어나 이온이 잘 이동하게 된다.
정 교수는 “공기 중에서 안정하고 가격이 싸며 독성 문제도 적어, 전고체 리튬 배터리의 상용화를 크게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유망한 교수라면 처음부터 관련 분야에 관심이 많았을까. 정 교수의 대답은 의외였다. 전공을 선택할 때 10년 뒤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는 것. 처음에 화학공학과에 진학한 것도 아는 사람이 진로가 다양하다고 추천해서였고, 전기화학 분야를 전공하게 된 것도 새롭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정 교수는 “그런데 전기화학 분야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며 “하지만 어느 직업이든 견습 기간이 있는 것처럼, 조금 하다가 힘들다고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포기하지 않고 정진하다보니 어느새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고.
마지막으로 정 교수는 “10년 뒤 어느 분야가 유망할지는 알 수 없다”며 “전공을 선택할 때는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라”고 조언했다. “미래의 일들을 너무 미리 걱정하는 것은 배터리의 자가 방전처럼 에너지를 소진시킬 수 있습니다.” 배터리 전문가다운 조언이었다.
[연구실 人사이드] ‘90%의 실패’에서도 배운다
연구원들에게 연구실의 자랑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젊은 교수님’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젊기 때문에 열정이 많고, 학생들과 눈높이가 맞다고 한다. 또 교수가 정확하고 세세하게 연구 방향을 제시해주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 아주 많다고.
정 교수는 “화학이라는 분야가 원래 꼼꼼함이 필요하다”면서 “화학 실험을 하다 보면 10번 중 9번이 실패일 정도로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잘못된 실험도 꼼꼼하고 집요하게 분석하고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수랑 과학동아 기자 | hsr@donga.com
<본 기사는 2017년 4월 ‘과학동아’에 “안전한 배터리 전기자동차를 꿈꾸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