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주요신문에 “올해 하반기 삼성그룹 대졸 신입사원의 80%이상이 이공계 출신이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러한 이공계 우대 현상은 비단 삼성뿐이 아니다. LG, SK 등 주요 대기업들의 최근 신입공채에서 이공계 출신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교육부 자료에 의하면 2013년도 전국 4년제 대학 이공계 취업률은 67%로서 인문계열의 48%, 사회계열의 54%와 많은 차이가 있다. 올해는 그 차이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불과 얼마 전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이공계 기피’ 현상과 격세지감이 있다. 학생들이 전문직을 선호하여 이공계를 이탈하였던 것이 엊그제 일이다.
이러한 이공계 우대현상이 나쁠 것은 전혀 없다. 우리나라는 제조업중심 국가로 지금 도전받고 있는 제조업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기초·원천기술 및 첨단기술을 개발해 명실상부한 제조업 선진국이 돼야한다. 과거 일본의 경제적 부흥은 이미 100여년전 명치시대로부터 ‘기술입국’을 국시로 삼고 과학을 중시한 덕분이었다. 중국도 지도부의 대부분이 이공계 출신으로 과학기술우대 정책으로 과학기술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은 ‘2013년 주요국별 산업기술수준 조사결과’ 보고서에서 미국의 기술수준을 100으로 했을 때 한국은 83.9로 일본(94.9), 유럽(94.8)에 뒤지며 중국(71.4)에는 다소 앞선 상황이나 한·중 산업기술력 격차는 평균 1.1년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울산은 더욱이 제조업 중심도시로 주력산업인 조선, 석유화학에 대한 중국의 추격이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이공계가 더 좋은 여건아래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소위 ‘이공계 전성시대’에 대해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시대는 과학기술에 인문·사회학적 소양을 고루 갖춘 통섭형 인재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이공계가 시대에 맞는 이러한 인재를 교육해야 한다. 인문학적 소양은 인문학 책 몇 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류와 사회에 대한 깊은 탐구와 고민이 있어야 한다. 원래 과학은 16세기 이전의 르네상스시대까지만 해도 세분화되지 않고 자연철학으로 존재했다.
그 후 학문은 세분화와 전문화의 환원(還元)주의의 길을 걸어왔다. 20세기 후반으로 들어오면서 학문은 다시 융합되기 시작해 20세기 말부터는 본격적으로 학문간 통합의 개념이 시작됐다. 과학교육은 백년대계를 보고 미래를 열어가는 인재를 육성하여야 한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기술만을 고집한 ‘기술 오타쿠’(기술狂)도 한 몫을 했다. 기술 선도기업인 소니와 노키아가 몰락한 것은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시대의 흐름을 간과한 대가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울산의 위기와 갈등도 제조업에 인문·사회학적 소양이 부족해서 생긴 것이라 볼 수 있다.
지금 이공계 쏠림현상이 있다고 교육이 과학·기술에만 쏠려서는 안 된다. 인도의 간디는 ‘인간성 없는 과학’을 그의 7대 사회악의 하나로 들고 있다. 이공계교육에도 철학이 있어야 한다. 경제학이 1903년도에 영국 케임브릿지 대학에서 처음으로 철학에서 독립, ‘돈의 효용’만을 추구하였으나 2008년 금융위기로 마침내 그 한계를 드러낸 것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경제학도 과학기술도 모두 인류의 복지를 위해 존재한다.
유니스트는 2009년 개교이래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과학 선도대학으로 융합형 인재교육에 힘써 왔다. 이공계 전성시대를 보면서 우리의 이공계 교육이 멀리 보고 인류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바른 인재를 양성하도로 힘써야 하겠다. 그렇치 않으면 지금의 이공계 전성시대는 또 하나의 유행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정구열 울산과학기술대학교 기술경영대학원장
<본 칼럼은 2014년 12월 9일 경상일보 19면에 ‘정구열 칼럼 이공계 전성시대’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