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는 조선 정조 때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1780년 팔촌 형 박명원이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 잔치 사절로 연경에 갈 때 따라가 보고 들은 것을 남긴 견문기다. 박지원은 중국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런데 그의 대답이 아주 뜻밖이다. “꼭 성지· 궁실·누대·시포·사관·목축, 그리고 원야의 광막함과 안개 낀 숲들의 환상적인 풍경이라야만 장관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뒤 “장관이 바로 거름에 있다”고 대답한 것이다. 그러면서 박지원은 “분뇨는 지극히 더러운 물건이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은 이것으로 논밭을 가꾸기 위해 금덩어리처럼 소중이 여긴다”고 말했다. 중국에선 사람들이 삼태기를 들고 말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말똥을 줍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거름을 보면 천하의 제도가 여기에 확립돼 있다”고 잘라 말한다.
박지원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분뇨는 ‘지극히 더러운’ 것이다. ‘똥 찌른 막대기’니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우리네 관용어 표현도 있듯 분뇨는 사람들이 가장 멀리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박지원은 중국 사람들이 분뇨를 ‘황금 덩어리’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에 여간 감탄해 마지않는다.
오늘날 환경 위기를 가져온 원인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질소질 비료나 인산질 비료 같은 화약 비료를 너무 많이 써 왔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녹비나 분뇨와는 달리 비싼 돈을 주고 사서 쓰는 비료라는 뜻에서 흔히 ‘금비(金肥)’라고 부른다.이 화학 비료는 단기적으로 작물의 수확을 늘리는 데 도움을 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론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움이 되긴 커녕 오히려 토양을 오염시킬 뿐만 아니라 토질을 약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땅과 흙만 있으면 얼마든지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막상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은 상층토뿐으로 겨우 지하로 몇십센티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상층토가 그동안 관리를 잘못한 탓에 무참히 사라져 버렸다. 수십 년 전부터 시작한 아프리카 대륙의 기근은 상층토의 유실과 그에 따른 사막화 현상이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지금 지구상에선 1시간마다 1,500에이커에 이르는 땅이 사막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우려할 만한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상층토 유실은 비단 아프리카 대륙에만 그치지 않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세계에서 농업 기술이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도 1950년 이후 상층토의 3분의 1가량이 깎여나갔다. 전 세계 지역에서 1분마다 300t이 넘는 상층토가 사라지고 있다.
최근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서관 앞 광장에는 육각형의 멋진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사이언스월든 파빌리온’, 우리말로는 ‘사월당(思越堂)’이라고 부른다. 한국자연미술가협회 야투(野投, Yatoo)의 고승현 작가가 설계한 조형물로 조재원 도시환경공학부 교수가 개발한 ‘생태 화장실’이다. 조 교수는 하수처리장으로 들어가는 질소의 40% 이상이 우리가 버리는 분뇨에서 발생된다는 점에서 착안해 이 화장실을 개발했다. 생태 화장실은 분뇨가 포함되지 않은 하수만 도시 생태형 하수처리시스템으로 내보낸다. 하수는 자연정화 방식을 거친 뒤 하천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환경오염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또한 분(糞)은 변기에서 생태 바이오과학으로 퇴비로 만들면 도시농업 지역과 텃밭에서 퇴비로 활용할 수 있다. 한편 뇨(尿) 속의 인과 질소는 고도의 물리화학적 처리 기술로 재활용할 수 있다. 조 교수는 “도시형 생태 화장실을 통해 친환경 녹색 에너지를 실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양에선 1980년대부터 분뇨에 대한 관심이 있어 왔다. 미국의 여성 역사학자 캐럴린 머천트는「자연의 죽음」이란 책에서 17세기 유럽 사람들에게 분뇨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새삼 일깨운다. 농작물의 생산을 늘리고 새로운 곡물의 품종을 개량하는데 거름이 절대적인 역할을 맡았다고 밝힌다. 14세기와 16세기에 걸쳐 기근이 들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거름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단 외국만이 아니다. 십여 년 전 문화 인류학자 전경수는 「똥이 자원이다」라는 책을 출간해 큰 관심을 모았다. 그는 제주도 송당리 마을 사람들이 분뇨를 소중한 자원으로 사용하는 실례를 학계에 보고하면서 분뇨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또 문화 비평가 이규형은 「똥신드롬」이란 책을 써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똥의 성공학, 똥의 건강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저자는 사람들이 밥 먹고사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꽤나 세련되게 말하면서도 유독 먹은 음식물을 배설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기조차 꺼려한다고 비판한다. 전경수와 마찬가지로 이규형도 바로 사람들이 피하는 그 분뇨 속에 귀중한 보물이 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들어 분뇨에 대해 부쩍 깊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분뇨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거름을 보면 천하의 제도가 여기에 확립돼 있다”는 박지원의 말은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니다. 일찍이 18세기 말엽 분뇨를 ‘황금 덩어리’처럼 귀중히 여긴 그는 참으로 선각자라 할 만하다.
김욱동 문학평론가·UNIST 초빙교수
<본 칼럼은 2016년 6월 13일자 울산매일신문 20면에 ‘[오피니언]분뇨에 희망이 있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