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5일 오후 필자는 대학원생과 함께 학교 연구실에서 실험계획 토의에 몰두하고 있었다. 어느순간 갑자기 건물이 ‘고유 진동수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수 초간 심하게 흔들렸다. 우리는 곧 지진이 발생한 것을 직감했고, 여진을 우려해 비상계단을 이용해 서둘러 건물 밖으로 나왔다. 잠시 후 스마트폰에 전송된 국민안전처의 경고메시지를 통해, 울산 동쪽 해역 약 50㎞ 지점에서 리히터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지진은 우리나라가 지진기록을 시작한 1978년 이후 역대 5위급의 규모여서 더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에 몸소 지진을 경험한 울산과 부산 시민들의 불안감이 지대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과연 지진으로부터 안전지대인가.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한반도는 지진으로부터 자유로운 지역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이래 피해를 수반한 강진이 약 40회 이상 발생했으며, 16~17세기까지 지진의 활동이 활발했으나 20세기 들어 지진의 빈도와 규모가 줄어든 편이다. 주요 시설물의 경우 재현주기가 2500년 이상, 일반 건축물의 경우 1000년 이상인 지진에 대비하는 세계적인 내진설계 표준을 따르자면 과거 수 천년 간의 기록을 살피는 것은 결코 특정 집단의 아전인수를 위한 권모술수가 아니다.
올해 4월 중순 일본 구마모토에서 규모 7.3의 내륙형 지진이 발생해서 대규모의 인적 물적 피해를 입혔다. 이 지진은 지각판의 경계면이 아닌 내륙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다른 과거 대규모 지진들과 차이가 있다. 일본 지진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동경대 히라타 나오시 교수는 과거에 한국 동부 양산단층에서 규모 7 이상으로 추정되는 지진이 일어났던 사실을 지적하며 한국도 규모 7 수준의 ‘내륙형 지진’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사실 이번에 지진이 발생한 지역은 알려진 활성단층대에 위치해 있으며 이전에도 규모 3~4 정도의 지진이 빈번히 발생했던 곳이기 때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가치는 적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산 근해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온 나라 사람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노심초사하는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울산은 우리나라 제조산업의 수도로 불릴만큼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세계일류의 조선 및 자동차 생산시설의 보금자리일 뿐만 아니라 대규모 석유화학산업단지와 오일허브가 위치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석유화학 산업단지들이 국내 내진설계 기준이 마련되기 전인 1960~1970년대에 준공되었으며 구성 플랜트 및 건축물 시설이 노후화되고 있다.
또한 울주군, 기장군과 경주를 포함하는 울산 일대에는 총 10기의 원자력발전소가 가동 중이며, 건설 중인 원전까지 포함하면 14기에 달한다.
우리 모두는 2011년 3월11일 일본 동부 대지진과 지진해일로부터 비롯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 사건은 인류가 꿈속에서 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규모의 엄청난 피해와 절망감을 전세계에 남겼다. 이로 인해 방사능 오염물질의 전 지구적 확산이라는 2차적 재해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렇듯 울산 일대의 주요 산업단지와 에너지플랜트가 지진 또는 지진해일에 의해 피해를 입을 경우 발생할 2차, 3차, 4차의 막대한 사회적, 경제적 피해 규모를 고려할 때, 절대로 발생할 것 같지 않은 일말의 대지진 가능성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심 탈레브(NassimTaleb)는 2007년 초판된 그의 저서 (검은 백조)에서 ‘검은 백조 이론’에 대해 소개했다.
저자는 ‘검은 백조 사건이란 현재의 과학적 확률과 이해로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난 사건으로서 발생한 후에야 비로소 발생 가능성이 논리적으로 인식되는 사건들’이라고 정의했다. 저자는 이러한 사건들의 예로써 제1차 세계대전, 9·11 세계무역센터 공격, 인터넷의 등장 등을 들었다. 1697년 네델란드 탐험대가 오스트레일리아 서부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검은 백조를 발견하였다. 이로부터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져 왔던 것이 발견되거나 불가능하다고 인식되었던 것이 실제 발생하는 경우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말로 사용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역사상 대부분의 중대한 사건들은 당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여겼다.
지금 대자연이 던지고 있는 경고를 제대로 인식해야만 미래에 닥칠 대규모 재난을 일부나마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UNIST 도시환경공학부 신명수 교수
<본 칼럼은 2016년 7월 8일 경상일보 3면에 ‘“석유화학업체·원전 밀집한 울산도 규모 7 수준 내륙형 지진 대비해야”’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