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딥마인드 팀이 개발한 알파고와 이세돌의 세기의 바둑 대국이 열린지도 어느새 넉 달이 되었다.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많은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이에 따른 미래 사회의 변화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관련하여 인공지능 기술이 무인 자동차, 무기 및 제조업 등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한 미래 학자들의 예견이 쏟아져 나왔다.
머지않은 미래에 인공지능 기술과 그 발전이 우리의 삶을 크게 바꿀 것은 분명하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국이 우리나라에서 열려서 늦게 깨달았을 뿐이지, 그동안 이미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05년 미국 국방성은 사막에서 11.78km를 무인으로 주행하는 경주를 열었고, 스탠포드의 스탠리(Stanley)는 이 경주를 6시간 54분에 통과해 우승을 차지했다. 그당시 스탠포드의 기술인의 다수는 구글 무인자동차 팀에 합류해 구글이 무인자동차 분야에서 선도적인 업체가 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자연언어 처리 및 인간 대화 시스템에서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2011년 애플은 정확도와 기능성에서 한층 발전한 시리(Siri) 서비스를 공개했고, IBM이 개발한 왓슨 시스템은 Jeopardy라는 퀴즈쇼에서 우승함으로써 인공지능에 기반한 지식 검색 시스템이 인간의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였다. 올해 딥마인드의 바둑 대국이 있기 전에도, 딥러닝 기술은 얼굴 및 물체 인식 등의 문제에서 인간의 인식률에 도달했음을 보여줬다.
반면에 제조업 및 중공업 중심의 산업 수도 울산의 발전은 이와 다른 방향이다. 2014년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공사 부지를 10조원이 넘는 금액에 입찰 받은 현대자동차 그룹은, 이제 그룹의 얼굴을 ‘울산 공장’에서 ‘강남 글로벌비즈니스센터’로 바꾸는 것이라 천명했었다. 2016년 현대중공업은 다른 조선소들과 함께 수주 가뭄에서 구조조정의 방안을 강구중이다.
필자는 학부에서 대학원까지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전공했고, 지금도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울산의 산업적 강점인 제조업과 중공업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가지 강조할 수 있는 점은 비약적인 도약은 그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최근 인공지능의 발전을 이끈 수많은 연구자들의 보이지 않은 연구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스탠포드의 스탠리의 성공 뒤에는 세바스찬 쓰룬(Sebastian Thrun)이라는 독일 출신 연구자가 있었다. 쓰룬 교수는 독일에서 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1995년부터 미국 카네기멜론 대학에서 오랜 기간 박물관 안내 로봇 등 다양한 이동로봇에 필요한 기술을 연구 개발했다. 그 당시만 해도, 박물관 안내 로봇의 기술이 현재 무인자동차의 기술로 전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물론, 2003년 쓰룬 교수가 스탠포드로 옮기지 않았다면, 스탠포드가 미국 국방성의 그랜드 챌린지를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애플의 시리의 성공 뒤에도 1990년대 초반부터 대화형 시스템을 연구하고 개발하고 추후에 Siri를 창업한 애담 차이여(Adam Cheyer)등 스탠포드 연구소(SRI)의 연구원들의 연구 개발이 뒷받침이 됐다. 인공지능에 대한 실패로 9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는 인공지능 연구에 대한 패배감 및 거부감이 팽배해 있었지만, 2003년부터 미국 국방성 주도로 이루어진 CALO라는 대규모 연구 지원을 통해서, 미국은 다른 국가보다 빠르게 인공지능 기술을 발전시키고 시리 같은 제품을 상용화 할 수 있었다.
필자는 특정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선천적인 능력보다 만 시간의 후천적인 노력이 중요하다는 앤더스 에릭슨(Anders Ericsson)의 ‘만 시간의 법칙’을 믿는다. 알파고의 개발을 주도한 딥마인드의 창업자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가 바둑과 유사한 체스 전문가인 것을 본다면, 알파고의 승리가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해서 하루아침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울산은 세계적인 제조업, 중화학공업의 중심지이다. 국내 최고 수준의 개인별 총 생산(GDP)의 지표 뿐 만 아니라, 지금껏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해 온 산업단지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그 세계적인 경쟁력은 그 산업단지에 종사한 산업 인력의 경쟁력에 있을 것이다. 울산 산업단지의 인프라와 개인의 전문성이 하루에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또 쉽게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울산 시민은 이에 대한 충분한 자각 혹은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미래 학자들은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서 미래에 많은 직업이 없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중 딥러닝 기술은 사람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판단하는 것은 사람과 매우 비슷하게 판단할 수 있을 만큼 발전했다. 사무직 뿐 만 아니라 전문직 중에서도 인공지능의 발전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사람의 복잡한 인식 및 행동 및 조작이 필요한 제조업은 인공지능에 대한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세계적인 제조업 선진국의 경제부흥은 제조업의 부흥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었다. 최근 도요타 자동차의 부활이 일본 경제의 부활로 연결되고, 디트로이트의 부흥이 곧 미국 경제의 활성화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제조업도 새로운 기술을 융합해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물론, 인공지능 기술이 울산의 산업 경쟁력을 제고할 가능성이 매우 많다. 주요한 플랜트 및 선박의 고장을 정확하게 진단하여 원자력 발전소, 플랜트 및 선박 시설의 안전성을 높이고, 원유의 선물 및 현물 가격의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하여 동북아 오일 허브를 효과적으로 운용하게 할 수 있다. 중소규모의 로봇이 조작자의 의도를 파악해 무거운 장비를 손쉽게 움직이도록 도와줄 수 있다. 울산 산업과 인공지능을 융합하려는 창의적인 생각은 울산의 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유지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이세돌 기사는 공익 광고에 나와서 “괜찮아, 넌 잘 하고 있어” 라는 말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UNIST에서 세바스찬 쓰룬, 아담 차이여 그리고 데미스 허사비스와 같이 세계적인 연구결과를 내기 위해서 매일 고군분투하고 있는 필자에게, 이세돌 기사의 조언은 긴 호흡으로 큰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는 좋은 위안이 된다. 이 위안이 울산 현장에서 수십 만 시간의 전문성을 닦은 세계적인 산업 역군들에게도 위안이 되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이다.
최재식 UN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6년 7월 19일 울산매일 18면에 ‘ [창간25주년 특집]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시대와 제4차 산업혁명 “주력산업에 새로운 AI기술 융합…세계적 경쟁력 키워야”’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