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크리스마스가 눈앞에 온 ‘연말’의 시간이다. 우리가 아는 ‘연말’의 시각적 이미지는 화려한 장식과 조명, 분주한 움직임과 하얀 입김, 무언가 들뜬 분위기 등이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 모든 이미지들은 겨울이라는 시간적 장치에 어울리도록 치밀하게 설정된 요소들이다. 겨울이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트리의 초록색 잎과 하얀 눈, 빨강초록파랑의 조명, 온갖 모양의 반짝거리는 장식들은, 낮이 짧고 밤이 길어 어둑어둑한 배경과 입김이 하얗게 나오는 시각적 효과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따스함’을 찾게 하고 ‘따뜻한 감정’을 공유하려는 마음을 생겨나게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영화제목 같은 8월의 크리스마스가 어울릴까? 남아메리카 출장지에서 12월25일 남반구의 여름크리스마스를 겪어본 필자의 소견으로는 그저 흥겨운 축제나 코미디 쇼 같은 느낌이지 겨울이라는 배경이 주는 추움 속의 따뜻한 감정 같은 것은 좀처럼 느낄 수 없었다.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크리스마스트리는 겨울에 빛나는 존재다.
크리스마스와 겨울의 탁월한 세팅같이, 세상 모든 것에는 적절한 타이밍이 있다. 가슴 두근거리는 프로포즈로 여자 친구의 ‘Yes’를 이끌어내는 타이밍만이 아니다. 사업가에게는 과감한 투자를 밀어붙일 타이밍이 있고, 행정가에게는 어떤 정책을 제시하고 집행할 타이밍이 있고, 예술가에게는 새로운 형식을 발표할 타이밍이 있고, 디자이너에게는 트렌드의 방점을 찍는 아이디어를 제시할 타이밍이 있다. 심지어 우리는 결혼이나 효도에도 타이밍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그러나 확실히 잘 알고 있다.
이 타이밍을 잘 맞추면 모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좋은 결과물을 이끌어낸다는 사실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계획에 따라 정확한 타이밍을 잡아 일을 실행하는 것을 ‘적시적소’라고도 하며, 기막힌 타이밍으로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을 때, ‘운칠기삼’같은 표현을 쓰니까 말이다. 결과적으로 ‘만사형통’이 타이밍 하나에 달린 것은 아니지만, ‘만사형통’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요소이자 열쇠는 타이밍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순조롭지 못하거나 그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어떤 판단이나 투자, 정책, 발표시점을 놓쳐 빛을 보지 못한 순간들은 역사에 차고 넘친다. 멀게는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조선의 왕과 조정이 그랬고, 가깝게는 1997년 IMF 사태가 그렇다. 수많은 기업이 분야선정과 미래비전을 제시하고 변화하는 타이밍을 놓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다못해 먹는 음식이나 커피점도 진퇴의 타이밍을 놓치면 바로 망한다.
더욱 가까이 이 시기에 적절하지 못한 타이밍의 사례가 하나 있다. 제기되는 의혹을 적절한 시기에 해소시키지 못했고, 원하는 답변을 적절한 시기에 내놓지 못했던 탓에 고초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컨트롤타워가 아마 타이밍을 놓친 결정판의 사례가 아닌가 싶다. 사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저마다 바쁜 연말에, 점점 더 추워지는 이 겨울에, 매 주말마다 광화문에 국민들을 나오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굿타이밍의 미학이 절실한 오늘이다. 시대의 해결점을 요구하는 지금, 밖으로는 브렉시트, 유럽 우경화, 트럼프 당선인의 미국을 기점으로 신고립주의 체제 등이 기존 질서를 흔들고, 안으로는 철강, 조선 등 2차산업의 위기와 4차산업혁명이 교차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혜안의 타이밍이 간절한 시기다.
흐름을 읽는 것, 트렌드와 타이밍을 캐치하는 것은 디자인의 전형적 요소다. 아무리 좋은 기획과 디자인의 제품이라도 시장이 원하는 시기를 놓치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타이밍은 곧 디자이너의 실력이다. 그리고 이 타이밍을 읽는 것은 통찰력에서 나온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온 세상이 혜안의 타이밍을 고대하는 오늘을 우리가 살고 있다. 생각을 바꾸어보라. 우리가 이 변화의 타이밍 속 영웅들인데,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메리 크리스마스 & 해피 뉴이어!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 융합전문대학원 교수
<본 칼럼은 2016년 12월 20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타이밍의 미학’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