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력하지만 필자가 그나마 전공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학문은 전기화학이다. 화학반응을 전기로 제어하거나 화학반응으로부터 전기를 끌어내기도 한다. 휴대폰에 사용되는 재충전이 가능한 배터리는 전기화학반응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화학반응의 드라마를 연기자인 분자와 전자 대신 전압과 전류라는 별로 와 닿지 않는 변수로 표현해서인지, 수학 공식에 지쳐서인지, 아님 가르치는 자의 부족한 강의 능력 때문인지, 학부생들에게 어려운 과목으로 악명이 높단다.
여타의 자연과학이 그러하듯, 전기화학의 학문적 체계는 열역학 (thermodynamics)의 뼈대와 동역학 (kinetics)의 핏줄로 구성된다. 학문적 디테일은 골격 안에서 정의되며, 핏줄로부터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열역학은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를 알려준다. 동역학은 그 현상이 일어날 경우 얼마나 빨리 혹은 느리게 일어날 것인가를 말해준다. 즉, 열역학은 ‘운명’에 대한, 동역학은 ‘속도’에 대한 담론이다. 89년작 로맨틱 코미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남녀 주인공은 1977년 시카고 대학에서 만난다.
어떠한 초기 징후도, 아니 오히려 부정적인 조건만이 뚜렷했지만, 열역학은 말한다. 둘은 맺어질 것이라고. 일단 그들의 운명이 열역학적으로 결정되면,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언제?’ 즉 동역학적 요소이다. 다행히도 영화에서는 처음 만난 지 12년 3개월 후에 결혼하여 그 운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역학적 속도가 느려 우주적 스케일의 시간 단위로 사건이 진행된다면 우리는 아쉽게도 운명을 확인할 수 없다.
울산 시내를 다니다 보면 가끔 연료전지 차가 보인다. 연료전지는 수소 가스에서 전자를 뽑아내어 전기를 만드는 전기화학 기반 발전장치이다. 수소 원자는 전자를 단 하나만 가지고 있어 원자 중에서 가장 작고 단순한 놈이다. 수소 가스는 수소 원자 두 개가 전자 하나씩을 내밀어 악수하는 꼴을 하고 있는데, 이 악수하던 손을 가로채면 두 개의 원자로 쪼개지고, 각 원자는 가지고 있던 전자 모두를 잃어 더하기 부호 (+)를 가지는 양성자로 남는다. 전기화학자가 되어 이 반응의 실효성을 살펴보자. 먼저 체크해보아야 할 것이 열역학이다. 과연 반응이 일어날 수 있기는 한가? 수소 가스의 악수 전자를 가로챌 반응이 필요하다. 산소를 물로 바꾸는 반응이 짝 반응으로서 모든 열역학적 조건에 부합한다. 다음은 동역학이다. 일어나긴 하는데 얼마나 잘 (빨리) 일어나는가? 사용 가능한 충분히 큰 전류를 끌어낼 수 있는가?
안타깝게도 답은 그렇지 않다 이다. 수소 가스의 전자 발생 반응은 생긴 것과는 달리 매우 느린 속도를 자랑한다. 게다가 짝 반응인 산소-물 전환 반응은 더 느리다. 그러나, 다행히도 촉매를 이용하면 동역학적 속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 그래서 연료전지에서는 백금 등의 촉매 사용이 필수적이다.
비생물적 자연과학 (physical sciences) 현상이야 열역학적, 동역학적 모델을 도출하기가 쉽다. 상대적으로 단순하며, 빠른 동역학적 속도에다가, 빅뱅 후 137억년, 지구 나이 45억년의 우주적 시간 스케일에서 진행되어 왔던 터라 열역학적 최종목적지인 평형상태의 관찰이 쉽고 실험이 용이하다. 그런데, 연구대상이 인간 사회쯤 되면 참으로 복잡해진다. 물리학, 화학 등의 기초적 하부 과학에서 바라보면, 생물학적 유기체를 넘어서 개체 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인 사회적 유기체라는 연구토픽은 쳐다보면 돌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아름다운 메두사다.
사회과학을, 좀 더 복잡한 심리학, 좀 더 복잡한 생리학, 이런 식으로 꾸준히 환원하자면 종국적으로는 좀 더 복잡한 화학, 좀 더 복잡한 물리학이 될 터인데, 아직까지 이러한 극단적인 환원주의적 접근은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사회과학자들은 역사와 논리를 재료와 방법으로 상부과학 수준에서 사회에 대한 열역학과 동역학을 발전시켜왔다.
대선정국 이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그간 진영 논쟁이 꾸준히 있어 왔다. 열역학적, 동역학적 관점에서, 보수는 현 사회를 이미 평형에 도달한 상태 그래서 유지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가치체계이다. 진보는 현재를 비평형상태로 규정하고 이상적인 평형에 도달하기 위해 동역학적 속도를 빠르게 하려 한다. 즉, 보수는 열역학적 안정을, 진보는 동역학적 변화를 가치의 슬로건으로 내세운다.
글을 쓰는 시점이 장미대선 전이고, 지면이 언제 열릴지 몰라, 시론이라는 관점에서 동사의 시점을 어찌해야 할 지에 대한 주저함이 과격하다. 투표권자의 투표는 다수결의 원칙을 통해,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든 궁극적인 것이든 간에, 열역학적 평형상태가 무엇인지를 제시하게 된다. 당신의 한 표는 보수에게는 상태결정인자이며 진보에게는 촉매이다. 만약 그것이 유사 혹은 사이비 평형상태였다면, 우리는 진짜 평형상태에 조금은 늦게 도달할 것이다. 투표 하시라. 당신의 한 표가 결정한 평형상태의 지향점을 확인하시라. 약속한 가치와 정책이 정말로 실현되는 지 감시하시라.
송현곤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7년 5월 17일 울산매일신문 16면에 ‘[시론 칼럼] 반드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그러나 얼마나 빨리?’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