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로 주고받는 말을 얼마나 신뢰할까?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미국이나 영국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이 하는 말을 진심이라 생각하는 보편적 성향이 있는데, 한국은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는 응답자 비율이 높단다. 운전 중 뒤에서 앰뷸런스가 사이렌을 울리며 다가올 때 정말 응급환자가 안에 있을까를 먼저 의심한다고 한다. 사회 구성원이 서로 신뢰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성숙할 수 없다. 진심은 사회를 지탱하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최근 휴가를 다녀왔다. 태평양 바다의 섬 한 면에 조성된 고급 리조트인데, 럭셔리풀빌라라면 으레 흔히 나타나는 유럽식 인테리어에 현지양식을 살짝 얹어놓은 구조의 건축물이 아니었다. 세로결의 식물 잎을 나무토막에 하나하나 싸서 기와처럼 조밀이 얹은 지붕구조는 비를 바깥방향으로 흘려 보내고 방수와 환기를 해결하는 로컬건축을 이해한 건축가의 작품이었다. 기둥과 벽면, 실내에 쓰인 가구는 현지나무의 표면을 깎았을 때 나오는 다양한 무늬, 어떤 의미에서 진짜 우드그레인으로 장식돼 있었다. 지역의 흙을 이용한 벽마감, 현지 돌을 이용한 바닥과 계단, 섬세하게 다듬은 디테일과 공든 조경은 멋진 풍광과 어우러져 엉뚱한 유럽의 고급호텔 복제품이 아닌 진짜 럭셔리, 고급 건축 디자인의 정수를 느낄 수 있었다.
흔히 고급, 럭셔리, 명품이라고 하면 무언가 크고 화려한 장식이나 패턴 이미지를 떠올린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명품, 럭셔리, 고급이라는 단어가 안 붙은 것이 없을 정도다. XX캐슬이라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는 거대한 신전 같은 아치가 있다. 고급인테리어 마감에는 유럽 문양형식의 화려한 벽지패턴은 필수다. 입체감 강한 가구장식과 복잡한 전자제품, 고급식당의 좌충우돌 인테리어까지 그러하다. 다들 뭔가 화려하고 커야 그것이 고급, 럭셔리, 명품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 모두는 그 것들이 가짜라는 것을 잘 안다. 그리스-로마시대 신전같은 아파트단지 입구는 수천년 전의 것이 아니라콘크리트 기둥에 대리석스타일 타일을 붙여놓은, 최근에 만든 것이다. 필자에게 그곳은 고급은 커녕 놀이동산 입구같이 코믹하다. 우리집이 최소 100년짜리 유럽 어떤 왕조의 궁이나 대저택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위치한 요즘 집이기에, 벽지 또한 적당히 복제해 대량 프린트시킨 가짜다. 수백년된 나무를 장인이 하나하나 조각해 만든 가구가 아니라 대량으로 찍어놓은 부조장식들을 눈속임으로 이어 붙인 장식가구다. 진짜 금속과 나무재질을 쓴 것이 아니라, 그런 느낌이 들도록 인공적으로 표면처리를 한 제품이다. 럭셔리가 어쩌고 저쩌고하는 우리나라 최고급 차는 100년 역사의 유럽 럭셔리카 브랜드의 고유형상을 모방해 살짝 변형해놓은 수준이다. 아이러니는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가짜인 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진짜인 양 자기 최면을 걸고 있다는 것. 족보없는 모방과 겉치레 행세 또한 진심의 가치를 애써 외면하는 행위일 뿐이다.
왜 서로 신뢰않는 사회가 지속되고 있는가? 왜 아직도 유럽의 고급, 럭셔리를 흉내만 내고 있는가? 핵심은 ‘진심’이라는 가치의 이해에 있다. 대상의 고유성이 진심을 갖추었는가, 즉 아이덴티티가 진실한 것인가라는 물음에 ‘Yes’라 대답하는 것만이 정답이다. 유럽의 건축, 제품과 디자인은 그들 문화에 바탕한 진심으로 만든 결정체이기 때문에 우리가 열심히 따라간들 유사품일 뿐이다. 우리가 아무리 이탈리아산 비앙코대리석과 시커먼 현무암석을 가져와 경치 좋은 곳에 크고 으리으리한 고급호텔을 짓는다 해도 그 호텔은 유럽, 미국 것의 복제품, 카피일 뿐이다. 위에서 언급한 세계인이 진심 고급이라 손꼽는 로컬양식의 리조트처럼 우리나라에서만 가능하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양식과 재료를, 디자인을 고민해 표현할 때 견줄 대상이 없는 진짜 고급, 명품, 럭셔리의 가치를 얻을 수 있다.
작가, 예술가, 디자이너, 과학자, 연구자들이 표절이나 모방이 아니라 고유의 연구를 통해 지평을 넓힐 때 업적을 인정받는 것처럼 말이다. 그 것은 진심의 가치이자 ‘진짜 고급=높은 수준’이다. 베끼고 꾸미는 것은 가짜요 거짓이다. 고유의 것은 진짜요 진심이다. 진심과 고급은 관통하는 동의어다.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융합전문대학원 교수
<본 칼럼은 2017년 8월 18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진심의 가치, 고급의 의미’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