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18일 ‘고리 1호기’가 40년간의 운전을 마치고 영구정지됐다. 1978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국내 최초의 원자력발전소가 설계수명을 마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원자력 분야 연구에도 새 흐름이 시작됐다. 원전 설계와 건설, 운영에 이어 ‘원전 해체’를 위한 기술이 필요해진 것이다. 고리 1호기 해체를 위한 기술 개발을 주관하게 될 UNIST는 ‘대한민국 최초의 원전 해체’라는 역사를 쓰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됐다.
UNIST, 원전해체를 주도하다
고리 1호기는 6월 중순에 영원히 멈춘 뒤 5년 동안 원자로를 식힌다. 이후에는 원전 해체에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방사능에 오염된 원자로나 건물, 각종 폐기물 등을 안전하게 해체하고 원전 부지 환경을 되돌리는 큰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때 필요한 핵심요소 기술 개발을 UNIST가 주관하게 된다.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원전 해체 기수 개발을 주관하는 기관으로 UNIST가 선정된 데는 융합학부가 한몫했다. 원자력공학과 기계공학 트랙이 같은 학부에 소속돼 공동 연구에 유리했던 것이다. 실제로 원자력공학 트랙의 김희령 교수를 필두로 기계공학 트랙의 기형선, 배준범 교수 등이 원전 해체 기술을 연구하면서 많은 노하우를 쌓았다.
올해 3월에는 ‘원전해체핵심요소기술 원천기반 연구센터(이하 연구센터)’도 UNIST에 들어섰다. 이 연구센터는 앞으로 원전 해체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개발하고, 전문인력을 기르는 데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원전 밀집도가 높은 울산 지역을 기반으로 산학연 협력을 확대하고, 산업 기반을 갖춰나가면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까지 선점할 수 있다.
고리 1호기 해체 준비 상황 A t o Z: 고리 1호기는 5년의 냉각기간을 거친 다음 , 본격적으로 해체 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고리 1호기는 어떤 과정을 거쳐 해체되며, 각 과정별 주안점은 무엇인지, UNIST 준비상황을 들어 봤다.
Q1. 원전 해체, 어떤 순서로 진행되나?
발전용 원자로가 영원히 정지하면 다 사용한 핵연료를 제거하고, 원전 해체 계획을 세운다. 고리 1호기는 이제 막 냉각기간에 들어가는 단계라 구체적인 해체 방식이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원전 해체는 제염, 절단, 폐기물 처리, 환경 복원이라는 4개의 단계를 거쳐 이뤄진다.
‘제염’은 원전의 핵심설비와 건물에서 방사능 오염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오염도를 낮춰 이후 안전한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전처리 작업이기도 하다. 낮은 수준의 방사능 오염은 이 단계에서 거의 제거된다고 보면 된다.
제염을 마치면 원자로 압력용기, 증기 발생기, 원자로 냉각재 펌프 등 각종 설비들과 콘크리트 구조물들을 ‘절단’한다. 다음으로 절단하면서 나온 다양한 ‘방사성폐기물들을 처리’하는 작업을 한다. 폐기물 처리를 완료해 발전소가 없어지면 ‘부지의 환경복원’ 작업을 한다. 작업 후에는 잔류 방사능을 평가하는데, 기준치 이하의 수치가 나오면 부지를 재활용할 수 있다.
Q2. 고리 1호기 해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원전 해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안전성 확보’다. 사람들을 방사능 환경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하면서 해체를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원전 위치가 주거지와 인접해 안전성 확보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해외에서 고리 1호기 해체를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고리 1호기 해체 준비에 있어서도 안전성에 대한 최고 수준의 기술을 확보해나가고 있다. 이 점은 해외 원전 해체 시장에 진출할 때 강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방사성폐기물의 양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200ℓ드럼 하나의 방사성폐기물을 매립하는 비용은 약 1200~1300만 원이다. 폐기물의 양을 줄이는 만큼 비용을 아낄 수 있으므로 관련 기술도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기계 설비 등에서 오염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제염 폐액도 문제다. 이 또한 방사성폐기물이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국토가 넓지 않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원전 부지의 환경을 복원할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방사능 수치가 안전할 정도로 떨어진다면 땅의 용도를 새롭게 개발할 수 있기 때문에 마지막 단계에서 아주 크게 주목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Q3. 국내 원전 해체 기술은 어느 수준까지 왔나?
올해 초부터 원전 해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컨소시엄이 꾸려졌다. UNIST가 전체 프로젝트를 주관하며 원자력연, 충남대, 단국대가 주축을 이룬다. UNIST는 주로 환경복원과 저준위 방사성 동위원소 모니터링 기술, 원격 절단 기술과 효율적 방사성폐기물 처리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원전 부지의 환경을 복원한 뒤 남아있는 방사능을 살필 때는 철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원전 부지에서 나오는 방사능 수치가 너무 낮으면 자연방사능과 구분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저준위 방사능 측정기술이 완비돼야 원전 해체가 안전하게 끝났는지 확인하고 부지를 활용할 수 있다. 김희령 교수팀은 원전 현장에서 짧은 시간 내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이동식 시스템을 구축했다. 기존 방사능 계측 기술과 IT 기술을 융합한 것이다. 앞으로 드론을 통해 방사능 분포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술도 확보할 계획이다.
원전 해체에는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대학이나 연구기관 외에 민간 기업도 참여할 계획이다. 이미 원전 해체에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기업체들이 고리 1호기 해체 작업 참여에 적극적인 편이다. 이런 기술을 현장 상황에 맞게 접목시키는 게 관건이다. 원전 해체 기술의 국산화 수준은 70% 정도로 보고 있다. 즉시 투입할 수 있는 기술 외에도 현장에 투입하도록 조정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포함한 수준이다.
Q4. 고리 1호기 완전 해체까지는 얼마나 걸리나?
해외사례에 비춰보면 원전 해체 계획을 세우고 인허가에 10년 정도 걸린다. 모든 해체를 마치고 환경복원까지는 기본적으로 2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예상은 ‘즉시 해체 방식’을 따를 경우라고 보면 된다. 고리 1호기에 대한 해체 방식이 결정나진 않았지만, 즉시 해체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지연 해체 방식’을 따르게 되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지연 해체는 직접적으로 원전을 해체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방식이다. 반감기가 상대적으로 짧은 방사성 동위원소들은 수십 년 정도 지나면 다 없어지는데, 이후에 남은 방사성 동위원소들만 제거하는 방식으로 원전 해체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원전 해체에 20년에서 길게는 60년까지 걸린다.
고리 1호기, 원격절단의 신기원 열린다: 원전은 어떤 시설보다 안전하게 건설된다. 그만큼 튼튼하게 지어져 각종 설비를 절단하기도 어렵다. 특히 제염 단계를 거쳐도 방사성 물질이 남을 수 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가 ‘원격 절단’이 다. 사람 대신 로봇을 현장에 투입해 멀리서 조종하는 방식이다.
Q1. 고리 1호기 절단 작업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
절단은 방사능으로 오염된 원전 장치들을 작은 크기로 자르는 과정이다. 원전처럼 거대한 장치 그대로는 방사능 오염물을 제거하거나 폐기 처리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우선 작게 자르고 오염물을 닦는 것이다.
그런데 원전은 안전을 위해서 부품을 매우 두꺼운 소재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쉽게 잘리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또 오염된 부품을 자르는 과정에서 작업자가 방사능에 피폭될 위험도 있다. 원전 부품 절단에 사용된 기계나 톱날 등이 외부로 노출되면 일반인이 방사능에 노출될 수 있어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Q2. 안전한 절단 위해 ‘레이저’나 ‘로봇’을 쓴다고?
원전을 안전하게 절단하는 방법 중에는 ‘고출력 레이저’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멀리서 레이저를 쏘는 방식이므로 안전한 절단 기술로 꼽힌다. 톱날 같은 기계적인 장치로 원전 부품을 자르게 되면, 방사능에 오염된 톱날 등을 처리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광학계를 사용해 레이저를 쏘면 원하는 부분만 깔끔하게 잘라낼 수 있다. 기형선 교수팀은 레이저 기반의 원격 절단 기술에 관한 기초적인 연구를 수행해 향후 다양한 소재로 이뤄진 원전 부품을 효과적으로 절단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원전 현장에 로봇을 투입하고, 사람이 멀리서 조종하면서 절단하는 방법도 구상 중이다. 배준범 교수팀에서 개발 중인 ‘아바타 로봇’의 개발이 완료되면 원전 해체 영역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로봇과 레이저 절단 기술을 연동하면 원전 절단 공정을 자동화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Q3. 레이저 절단 기술은 어떤 수준까지 왔나?
레이저 절단 기술은 현재 다양한 산업체에서 방대하게 사용 중이다. 하지만 원전 해체에서 쓰려면 기술을 조금씩 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원전 해체 작업은 작업자가 자유로운 공간에서 절단을 수행할 수 없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면 레이저 빔의 진행 특성을 원전 해체에 적합하도록 변환시켜야 한다.
또 매우 두꺼운 소재를 효과적으로 자를 수 있는 기술도 개발해야 한다. 레이저 기술은 절단뿐 아니라 부분적 으로 방사능 오염을 제거하는 제염 기술로도 발전시킬 수 있다.
방사성폐기물, 안전하게 처리하는 신기술 개척: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폐기물량을 줄이는 게 중요한 문제다. 제염으로 폐기물량을 줄이는 기술 개발은 세계적으로도 걸음마 단계다. 이 분야의 연구개발은 향후 우리나라가 기술 선점을 노려볼 분야기도 하다.
Q1. 원전 해체에서 방사성폐기물 처리의 비중은?
비용이나 시간 면에서 따져보면, 방사성폐기물 처리가 원전 해체 기술의 절반을 차지한다. 거대한 원전 시스템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기체, 액체, 고체 등 다양한 상태의 폐기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들 폐기물을 처분하려면 많은 공간이 필요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
특히 우리나라는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을 이용하는 단가가 외국보다 3~4배 비싸다. 부지를 확보하기 어려워 땅값이 많이 들어갔고, 안전성 강화를 위해 다른 나라보다 튼튼한 폐기물 처분장을 만들다 보니 건설비가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싼 시설 이용료를 줄이려면 방사성폐기물 안의 오염물질을 모아서 농축해야 한다. 이렇게 폐기물의 부피를 줄여나가는 일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모된다.
Q2. 고리1호기 해체, 얼마나 많은 폐기물이 나오나?
고리 1호기 해체 시 배출되는 방사성폐기물 양은 1만 4500드럼(200ℓ 드럼 기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외국 해체 사례와 비교하면 3분의 1도 안 되는 매우 적은 양이다.
폐기물 처리 기술의 가장 큰 목표는 ‘부피를 줄이는 것’이다. 특히 부피가 줄어든 폐기물은 땅에 묻기 전에 ‘폐기물 고화체(waste form)’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액체 상태의 폐기물을 그대로 묻으면 장기적으로 누출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더 안정적인 고체로 바꿔서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다. 고체 형태 중에서도 더 안정한 산화물로 만들어 묻는다.
우리나라는 특히 국토가 좁아 방사성폐기물을 처분할 땅이 마땅치 않다. 이런 한계는 오히려 기회로 작용해, 방사성 폐기물 처리 기술을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고 있다. 안전할 뿐 아니라 농축효율도 극대화한 방사성폐기물 처리 기술을 우리나라가 세계 원전 해체 시장을 이끌 전략적인 분야로 보는 이유다.
Q3. 방사성폐기물 처리 기술은 어떤 게 있나?
방사성폐기물 처리에는 다양한 기술이 활용된다. 금속 입자를 고속으로 쏘아 표면의 오염물질을 깎아내는 ‘샌드블라스트(sandblast)’ 기술이 시도되고, 방사성폐기물을 용액에 담고 전기화학적으로 표면을 녹이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방사능에 오염된 덩어리는 금속을 녹여 산소를 불어넣는다. 이때 산소 분압을 잘 조절하면 원하는 방사능 불순물만 걷어낼 수 있다.
폐기물 처리 기술에는 ‘재활용 기술’도 포함된다. 방사성폐기물을 닦아낸 부품 등을 원자력 산업에서 다시 사용하는 것이다. 자연 상태의 재료를 가져다 원자력 분야에 활용하면, 새로운 방사성폐기물이 만들어진다. 반면 원래 방사성폐기물을 재처리해서 활용하게 되면 폐기물량을 줄이면서 새로운 재료를 쓰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우선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준을 명확히 세우기 위한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
원자력발전을 더 환경친화적인 에너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폐기물 처리 기준을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 재활용은 아주 오염도가 낮은 콘크리트와 제염을 통해 깨끗해질 수 있는 금속에 한정시키는 방향이 좋다고 판단된다. 최성열 교수팀은 1차적으로 이미 있는 기술을 이용하면서 비용은 낮추고 효율은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