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고 나서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간다. 첨단 과학기술이 낳은 다양한 문명의 이기들도 수명을 다하면 분해되고 폐기된다. 원자력발전소도 예외는 아니어서 장기간의 운전 끝에 노후화돼 가동이 정지되면 해체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요즈음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되고 있는 ‘원자력발전소 해체’, 이제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고리, 영광, 울진 및 월성에서 23개의 원자력발전소가 가동 중이며 40년 가까이 가동된 발전소에 대한 해체 논의가 각계각층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특히 울산은 11개의 원자력발전소가 코앞에 모여 있는 원전 도시로서 오래된 원자력발전소 해체에 대한 관심은 어느 지역보다 높다. 해체기술 개발 측면에서도 유니스트 원전해체융합기술연구센터를 비롯해 산학연간 높은 관심과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일반산업시설과는 다른 원자력발전소 해체는 어떻게 이뤄지고 어떤 기술들이 필요한지 짚어보고자 한다.
원자력발전소는 직접 우라늄 핵분열 에너지를 발생하는 원자로, 열에너지를 수증기로 만드는 증기발생기, 터빈을 돌려 전기를 발생시키는 발전기를 포함한 다양한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우라늄이 쪼개지면서 나오는 중성자와 핵분열 생성물은 원자로나 계통을 오염시키게 된다. 예컨대, 원자로를 구성하는 생체차폐 콘크리트가 이러한 중성자에 의해 방사화되고 세슘 등 핵분열 생성물에 의해 오염된다.
또한 원자로 계통이나 필터들이 삼중수소나 방사성탄소에 의해 오염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원자력발전소는 방사성 핵종들로 오염된 부분을 포함하는 방사선 환경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오랜 기간 운전을 하고 나서 정지된 원자력발전소의 크고 작은 방사능에 의하여 사람이나 주변 환경이 영향을 받지 않도록 원자력발전소를 안전하게 해체할 필요가 있다.
원자력발전소의 해체 방식은 정지 후 열이나 방사능이 줄어들 때까지 5년 정도 기다렸다가 바로 해체하는 즉시해체와 방사성 물질이 붕괴하도록 수십 년 이상 기다렸다가 해체하는 지연해체로 나뉜다. 국제적으로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노후화된 원자력발전소를 해체하기 위하여 지연해체 방법보다는 즉시해체 방법을 선호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기술, 비용, 관리, 사회적 측면을 고려해 가장 적합한 해체 방법을 선택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어떤 방식이든 원자력발전소의 해체는 방사성핵종으로 오염된 부분을 제거하는 제염, 원자력발전소내 다양한 구성요소를 자르는 절단, 해체시 발생하는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처리처분, 그리고 해체후 원자력발전소 부지를 방사성 오염이 없는 상태로 깨끗하게 되돌려주는 환경 복원으로 나뉜다. 원자력발전소를 해체하는 데에는 10-20년의 기간이 소요되며 기간별로 적합한 해체 활동을 하게 된다.
각 해체 활동에 필요한 기술 들은 일반적인 산업 기술을 포함해 방사선 환경이라는 특성에 따른 특수한 기술이 요구된다. 절단은 기계적으로 큰 것을 작게 자르는 것이며 방사선 준위가 상대적으로 높아 사람이 직접 작업하기가 힘든 곳에서는 로봇을 이용한 원격 절단 기술이 필요하다. 또한 매우 두꺼운 물체를 효과적으로 절단하는 레이저 기술들도 요구된다. 오염된 부분을 최대한 제거하여 방사성폐기물의 양을 가능한 작게 만드는 제염 기술, 해체방사성폐기물의 처리 기술은 원자력발전소 해체 핵심 기술에 속한다. 해체 부지의 환경을 새로운 발전소 건설이나 녹지로 활용하기 위한 부지 환경복원 또한 해체 핵심 기술들 중의 하나이다. 이렇듯 원자력발전소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기계, 화학, 환경, 방사선 등 다양한 분야의 종합 기술이 요구된다.
우리나라는 원자력발전소 해체를 위한 38개의 핵심 기반 기술들 중 오염토양처리 기술을 포함한 17개 제염해체 기술을 개발 확보했다. 고방사성 환경 로봇원격절단 기술, 저준위 부지 환경복원 기술, 고방사성폐기물 안정화처리 기술 등 21개의 미확보된 해체 소요 핵심 기술들은 앞으로 연구 개발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핵심 기술들을 개발해 원자력발전소 해체에 적용 실증하는데는 10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므로 원자력발전소 해체기술개발을 위한 연구시설인 원전해체기술종합연구센터 구축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울산과 같은 기술집약적 선진 원전해체 융복합 관산학연 인프라가 바탕이 된다면 우리나라 원전해체융합기술의 전망은 더 없이 밝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희령 UNIST 기계 및 원자력공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5년 6월 2일 울산매일 15면에 ‘원자력발전소 해체와 해체기술’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