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랫동안 우리 인류의 유일한 이동 방법은 두발로 걷는 것이었다. 몇만년을 걷기만 하던 인류는 BC 6000년에서야 바퀴를 사용, 두발 이외의 이동수단을 갖게 되었다. 그마저도 인력으로 움직였던 수레는 다시 3000년이 더 지나서 비로소 소, 말의 힘으로 굴러가게 됨으로써 탈-2족보행, 탈-인력의 지평이 열렸다. 그리고 사람이 앉은 자세로 이동하는 마차는 2000년 전에야 출현했다. 그리고 동물의 힘이 아닌 기계, 특히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는 이제 겨우 120년 남짓 되었을 뿐이다.
본격적으로 사용자가 안락하게 실내에 앉아 목적지로 이동하는 모빌리티는 근대 마차부터다. 여러 마리 말이 끄는 4바퀴 마차, 길이 5m, 폭 2m, 높이 2.5m 내외다. 마차의 앞은 마부가 앉는 공간이다. 말에게 운행과 관련한 다양한 신호를 보내는 가죽 끈이 오늘날 스티어링휠과 같달까? 마차 중앙부는 손잡이로 여닫는 문이 좌우 2개씩, 실내에는 2~3인용 소파가 마주보게 놓여있고, 가운데 테이블도 있었다. 실내에 앉아 밖을 살피거나 여행 중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넓은 유리창도 4~6개가 달렸다. 마차 뒤쪽에는 여행가방을 놓거나 부착하는 곳이 있는데, 이 마차에 붙은 여행가방 ‘트렁크’가 오늘날 자동차의 뒷부분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있다.
마차가 목적지로 이동하는 동안 탑승자들은 아늑한 실내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휴식을 취했다. 간단한 식사나 티타임을 갖는 것도 가능했던 마차는 움직이는 거실과 같아서, 프랑스어로 살롱, 영어로 살룬, 독일어로 리무지네라, 미국에서는 세단이라 불렸다.
마차 디자인은 소파와 테이블을 공간효율을 높이면서도 아름답게 배치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장식, 소재와 패턴이 적용되었고 초기에는 마차 각 요소를 부각시키는 장식적 표현에 치중했으나, 점차 마차 전체를 하나의 움직이는 오브제로 간주해 요소간 시각적 조화를 이루는 간결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중세~왕정시대 고급마차는 과도한 보석과 금장식으로 일명 ‘황금마차’라 불렸지만, 18세기 후반부터 근대 미의식의 변화에 따라 고급 목재무늬의 유광 표면과 거울 같은 금속제 몰딩, 발 받침, 손잡이가 조화를 이루는 모던한 형태로 변화했다. 오늘날 고급 자동차에 남아있는 원목무늬 장식과 크롬재질 손잡이, 글라스 몰딩의 유래다.
오늘날 자동차는 이처럼 크기, 형태와 구조 대부분을 마차에서 계승하고 있지만 딱 한가지 차이점은 앉은 레이아웃에 있다. 탑승인원은 똑같이 4~5인승이지만 모두 앞을 보고 앉는 것은 오늘날의 자동차고, 마주보고 앉는 것은 과거의 마차다. 이는 자동차 성능 발달로 운행속도가 빨라져 시야확보나 충돌 등 안전성 문제가 대두된 탓이다. 5m 크기에 엔진룸, 충돌시 충격 흡수 공간과 구조를 확보하고, 에너지 효율성 높이느라 높이도 낮아져 실내공간은 예전의 마차보다 휠씬 좁고 답답한 공간이 되었다. 기술발전이 오히려 행동을 제한하는 샘이다.
그런 고통 끝에 드디어 전기차와 자율주행기술이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엔진 없는 전기차의 평평하고 넓은 차체바닥은 공간배치를 자유롭게 한다. 충돌사고가 나지 않는 자율주행차는 더 이상 앞을 보고 앉을 이유가 없다. 마주보고 앉는 마차시대의 레이아웃으로 되돌아 간다. 운행시야확보용 창문은 필요 없고 풍광을 감상하는 창문이 필요하다. 따라서 아마도 근미래 자동차는 거주성이 좋으면서 스타일도 살아있는 길이 5m, 폭 2m의 늘씬한 원박스, 움직이는 라운지 형태일 것이라 본다.
그러나 미래에도 차량제원은 비슷하다. 왜일까? 인프라 때문이다. 현행 자동차 도로의 폭, 최소 회전반경, 한계속도가 반영된 도로설계, 진입시설물 속 공간분할, 주차면 크기까지 모두 오래 전부터 구축되고 유지된 까닭이다. 로마제국때 건설한 도시와 도시간 도로, 우마차, 전차의 폭이 중세, 근대 마차의 폭으로 계승되고, 이것이 현대의 자동차 크기를 제한했고, 미래 자율주행차의 크기를 규정하는 틀로 작용하고 있다. 고대 로마는 참 대단하다.
우리 미래는 처음 보는 뜬구름이 맞네 틀리네가 아니라, 구축된 인프라를 얼마나 잘 활용하고 조화를 찾는가에 있다. 사람이 운전하지 않고 이동할 때,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전에 않던 전혀 새로운 행동을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일상적 활동을 그대로 한다. 그 일상 어떤 부분을 모빌리티와 결합할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인가를 찾는 것이 혁신의 열쇠다. 진짜 이동성, 모빌리티의 혁명이다.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 융합전문대학원 교수
<본 칼럼은 2019년 7월 15일 경상일보 18면 ‘[경상시론]모빌리티의 혁명, 이동성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