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기계의 지배를 받는다면, 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1984년 개봉한 영화 터미네이터는 인간과 인공지능으로 의식을 갖게 된 기계와의 싸움이었다. 영화에서 ‘스카이넷’이라는 인공지능은 인간을 멸종시키기 위해 핵전쟁을 일으키고, 살아남은 인간들을 제거하기 위해 터미네이터를 만들었다. 스카이넷은 저항군의 리더 ‘존 코너’를 제거하기 위해 T-800이라는 테미네이터를 1984년으로 보내게 된다. 영화의 특수효과도 뛰어났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탄탄한 세계관으로 영화는 큰 성공을 거뒀다.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1999년 개봉한 매트릭스였다.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은 인간을 적으로 간주하고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매트릭스에서는 자신들의 에너지원을 위해 인간을 활용하기로 한다. 커다란 인큐베이터에서 인간들은 가상의 의식세계 속에 살아가며 자신의 생체에너지를 기계에 공급한다.
애플의 시리, 구글의 어시스턴트, 아마존의 알렉사라는 인공지능 비서들이 점점 발전하고 있다. 나는 아직 애플의 시리에게 명령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색하다. 가끔 장난삼아 알람을 설정해볼 뿐이다. 하지만, 초등학생 자녀들은 시리와 대화를 곧잘 한다. 시리의 농담에 재미있게 웃는다. 시리에게 심심하다며 놀아달라고 떼쓰기도 한다. 영화에서 보았던 인공지능의 인간지배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이 만들어낸 피조물이 인간을 다스리는 현실을 먼 미래 인공지능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역사학자 유발하라리는 책 ‘사피엔스’에서 우리가 세계를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보잘 것 없었던 식물인 밀을 돌보고 대량생산을 하게 된 것은 생존과 번식의 관점에서 인간의 승리가 아닌 밀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사회에서 인간이 발명해낸 ‘기업’은 인간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기업은 본래 인간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혼자서 일하기보다 여럿이 함께 역할을 나눠 일을 하면 생산성이 높아지고 삶은 풍요로워 질 수 있다. 이것이 기업의 역할이다. 그런데, 지난 수십년간 기업은 인간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행복과 풍요를 위해 기업을 만들었지만, 기업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인간에게 행복을 잠시 미루라고 강요한다. 기업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인간의 가치가 낮아지고 있다. 기업은 우리 사회에 가장 강력한 종(specie)으로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자신을 창조해낸 인간을 도구화 하고 있다. 터미네이터와 매트릭스의 영화처럼 인공지능이 자아의식을 갖더라도 인간을 지배하지는 못할 것 같다. 인공지능은 더 강력한 기업의 지배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다만, 기업을 원래의 목적에 맞도록 건강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바이러스에 걸려 올바른 기능을 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백신을 투입해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은 거대한 기업의 숙주가 돼 살아가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 사회에는 기업과 인간의 관계를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으려는 많은 노력들이 있다. 지난 8월 19일 미국의 저명한 경영자 181명은 기업의 목적과 존재 이유에 대한 새로운 선언을 했다. 1978년 이래 정기적으로 열리는 이 행사는 ‘주주이익 극대화’라는 공고한 개념을 쌓은 곳이다. 그들은 과거 자신이 그토록 붙잡고 있던 교리를 버리기로 했다. 기업은 고객, 직원, 협력업체 및 사회공동체 모두에 대한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관점은 크게 새로울 것이 없다. 그것이 얼마나 실효성을 지니고 사회적 가치를 높일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문이다. 하지만 181명의 영향력 있는 경영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한 이 선언은 ‘기업은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기업의 올바른 역할을 다시 한번 깨우쳐 준다.
홍운기 UNIST 경영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9년 9월 4일 울산매일신문 19면 ‘[경제칼럼] 인간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기업’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