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며칠 동안 비가 내렸고, 주말에는 태풍도 지나갔다. 작년보다는 덜 더웠지만, 한여름 밤의 열기로 몇 주를 고생했는데, 가을 장맛비와 태풍이 지나고 완연한 가을이 왔다. 비가 많이 오면 수해가 염려되지만 적당한 비는 미세먼지를 포함한 대기오염도를 낮추기 때문에 반가울 때도 많다. 그러나 사실, 비는 근본적으로 미세먼지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미세먼지를 포함해 환경오염을 연구할 때는 항상 물질 순환을 염두에 둬야 한다. 빗물, 강물, 바닷물의 이온 성분을 분석하면, 빗물과 바닷물의 이온 구성이 상당히 비슷하다. 이유가 무엇일까? 환경분석개론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항상 이 현상에 대해서 질문한다. 정답은 많은 양의 바닷물이 증발하여 빗물이 되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증발한 물이 비의 형태로 다시 육상으로 내려오고 이것이 모여 계곡물이 되고 강이 되고 다시 바다로 흘러간다. 이를 물의 순환이라고 한다. 물을 포함한 모든 물질은 순환하므로 더 크게는 물질 순환이라고 한다. 오염물질도 당연히 순환하는데, 물과 함께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Dilution is the solution to pollution.”이라는 말과 같이,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더라도 희석되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대기오염은 비와 바람이 해결한다고 생각하고 검은 연기를 마구 내뿜기도 했고, 산업폐기물과 하수 슬러지를 먼바다에 버리는 해양투기도 많았다. 최근 일본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해양방류 계획도 이러한 잘못된 생각에 기초한다. 물론 미세먼지 사례와 같이 희석이 오염물질 농도를 당장 줄일 수는 있다. 그러나 많은 오염물질은 완전히 분해되지 않고 상당 기간 다양한 환경 매체에 남아 있거나 이동한다. 희석은 단기적인 미봉책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비가 많이 오고 나면 청명한 하늘을 볼 수 있다. 미세먼지가 씻겨 내려가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 습식침적(세정)이라고 한다. 비와 눈은 대기오염물질을 아주 효과적으로 없애준다. 그래서 도시에 내리는 비와 눈은 겉으로는 깨끗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지저분하다. 심지어 청정지역이라고 불리는 극지와 고산지대의 눈이나 얼음을 분석하면 온갖 중금속과 유기독성물질이 검출된다. 설령, 비가 많이 와서 하늘은 깨끗해지더라도, 미세먼지와 온갖 유해물질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단순히 지표로 이동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오염물질은 빗물이 흘러감에 따라 강으로 이동하고 바다로도 이동해서 어패류에 축적된다. 여전히 육지에 남은 오염물질은 식물에 흡수되어 초식동물 체내에 축적되거나 재 비산되어 다시 대기로 이동한다.
비슷한 예는 아주 많다. 대량으로 살포된 농약은 비가 오면 하천으로 유입되고 생물체에 축적된다. 농경지에 머물던 농약은 여름철에 기온이 올라가면 대기로 휘발된다. 도심에서는 콘크리트 도로에 쌓여있던 오염물질들이 토양으로 스며들지 않고 그대로 유출수와 함께 하천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비 오는 날 도로변에 쌓여있던 오염물질이 빗물을 따라 바로 강으로 유입되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이처럼 비가 오면 오염물질을 없애주는 효과가 있지만, 실제로 오염물질이 제거된 것은 아니고 단지 다른 환경 매체로 이동한 것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비가 오면 잠깐 대기질이 좋아질 수 있지만, 오염 원인을 해결한 것이 아니다. 언제라도 장기간 비가 내리지 않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대기오염이 심각해질 수 있다. 어떤 기상 현상과 기후변화가 발생하더라도 대기오염을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오염물질 배출을 줄여야 한다. 비에 흠뻑 젖어도 걱정 없이 웃던 그 시절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언제 다시 두 팔을 활짝 펴고 눈 속을 뛰어다닐 수 있을까? 내 유년의 추억을 내 아이는 경험할 수 있을까?
최성득 UNIST 도시환경공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9년 9월 10일 경상일보 18면 ‘[경상시론] 비와 미세먼지’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