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중국 하면 떠오르는 것은 공산당, 인해전술, 탁구, 중국집, 삼국지 정도였다. 1980년대까지 강조되던 반공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사람이 많이 사는 가난한 공산국가’ 정도로 인식했었다. 옛날에는 중국을 중공(중국공산당)이라고 불렀다. 1992년에 중공과 정식 수교 이후에는 중국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자유중국과는 단교하면서 대만(타이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중공과 수교하고 혈맹이라던 자유중국과 단교한 것에 대해 반공 소년으로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릴 적 기억 때문인지 지금도 국제학회에서 대만 교수님들을 만나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대학에서 중국 유학생을 쉽게 볼 수 있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중국 대학원생들이 실험을 배우러 한국에 방문하는 사례도 많았다. 예전에는 중국 연구자들이 국제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들은 전반적으로 수준이 낮아서 참고문헌으로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 중국의 연구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얘기도 많았다. 이때까지가 아주 짧게나마 경제 수준과 연구 차원에서 우리가 중국에 대해 우월성을 느낄 수 있었던 시기였다.
2004년 박사과정 중에 캐나다 토론토대학에서 6개월간 방문 연구를 했고, 학위과정을 마친 후에는 3년 동안 박사 후 연구원으로 토론토대학에 재직했다. 이 기간에 여러 중국 학생들을 만났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내가 만난 중국 학생들은 매우 똑똑하고 친절했다. 문화적 배경과 외모가 비슷한 동양 유학생끼리 친해지는 것은 당연했고, 이를 계기로 중국인에 관한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10년이 더 지난 지금 중국의 연구 수준은 정량적으로 미국과 1, 2위를 다투고 있고, 질적 수준도 상당히 우수하다. 최소한 내 전공 분야에서는 이미 중국이 우리를 한참 앞서고 있다. 내 연구실 대학원생들에게 좋은 논문을 읽고 요약해서 발표하라고 하면 대부분 중국에서 게재한 논문을 발표한다.
지난달 중순에 중국과학원 도시환경연구소에 방문했다. 토론토대학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중국인 친구가 몇 년 전에 중국과학원 교수로 부임하고 수차례 초청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학회참석을 위해 중국에 여러 번 방문했었지만, 국가연구소에 공동연구를 협의하기 위한 방문은 처음이었다. 푸젠성 샤먼시에 도시환경연구소 본원이 있으며, 저장성 닝보시에는 분원으로서 도시환경관측소가 있다. 3일 동안 두 곳 모두 방문했는데 우선 건물 규모에 놀랐고, 미세먼지 연구 장비를 보고 입이 벌어졌고, 기초 연구와 산업응용 연구가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에 감탄했다.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달리, 중국에서 배출된 대기오염물질이 자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로 장거리 이동한다는 중국 학자들의 연구 논문은 넘쳐난다. 미세먼지를 포함한 환경 연구에서 양과 질적인 차원에서 중국은 우리를 압도한다. 많은 국민이 미세먼지 관련해서 왜 중국에 할 말을 못 하느냐고 하지만, 국력 차이는 둘째 치고 학문적 성과를 보더라도 어려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협력할 수밖에 없다. 중국발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에 국내에서 고농도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기도 하지만, 연간 평균 농도 차원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자체적으로 배출된 미세먼지의 영향이 더 크다. 특히, 최근 빈번했던 여름철 울산의 고농도 미세먼지 사례는 중국의 영향이 아니라 부·울·경 자체 배출과 대기 중 2차 생성 영향이다. 중국 탓을 할 때가 아니라, 우리가 미세먼지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때다. 더 근본적으로는 울산의 미세먼지 오염특성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과학적인 자료를 근거로 저감 정책을 수립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최성득 UNIST 도시환경공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9년 11월 15일 경상일보 18면 ‘[경상시론] 울산의 미세먼지는 중국 탓인가’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