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구정도 지나 본격적으로 2020년이 시작됐다. 부산은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제2의 도시다. 그러나 제2 도시 부산의 위상이 흔들린다. 인천이 2017년도에 GRDP(지역 내 GDP)에서 부산을 앞질렀을 때 부산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있었다. 다행히 2018년에는 부산이 국내 제2위 자리를 되찾았으나 미래 먹거리가 뚜렷하지 않다. 올해는 ‘부산 금융 중심지’가 혁신적으로 도약해 부산의 미래 먹거리를 주도했으면 한다.
부산 금융 중심지의 도약을 위해선 우선 기존의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 패러다임이란 말을 만든 과학 철학자, 토머스 쿤(Thomas Kuhn)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과학 혁신을 주도한다고 했다. 부산 금융 중심지의 혁신적 도약은 바로 기존 ‘패러다임의 전환’에 있다 하겠다. 부산은 2009년 1월에 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 로드맵’에 따라 서울과 함께 금융 중심지로 지정됐다. 서울은 ‘종합 금융 중심지’, 부산은 ‘해양·파생 특화 금융 중심지’였다. 그동안 부산의 경우 문현동 일대 63층의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건물이 랜드마크가 되었고,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예탁결제원, 한국거래소 등 30여 개 이상의 굵직한 금융기관들이 그곳에 들어섰다. 숙박·문화 시설 등의 지원 설비도 확충되고 있다.
그동안 ‘금융 단지’는 많이 구축했으나 아직 가시적 성과는 별로 없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시대는 많이 변했다.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나온 지도 4년이 지났다. 4차 산업혁명은 그 후 빅 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무인 자동차, 3D 프린팅과 같은 혁신 기술들이 서로 얽히고 섞이면서 신성장동력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알파고’ 이후 AI(인공지능)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AI가 앞으로 더 짧은 시간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는 예측하기도 힘들다. 이러한 기술 생태계의 급격한 변화 가운데 ‘부산 금융 중심지’는 아직 기존 틀의 연장 선상에서 머무는 것 같다. 얼마 전 금융위원장도 ‘지난 10년간 추진되어 온 금융 중심지 산업이 만족스러운 성과를 도출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고 지적했다.
그동안 선박 금융, 해양 파생상품, 금융 집적지 구축에는 그런대로 성과도 있었다. 여기에 작년 7월 부산시가 ‘블록체인 규제 자유 특구지역’으로 지정됐다. 부산시는 이와 별도로 서면과 문현 지구를 ‘블록체인 및 핀테크 창업 촉구’지역으로 지정해 핀테크(Fintech)를 가미했다. 핀테크란 금융에 IT(정보기술)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것이다. 결제·송금, 대출, 자산 관리 등 전통적 금융의 디지털화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계좌이체, 예·적금 가입, 대출 신청 같은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핀테크 산업은 이미 런던, 뉴욕은 물론 중국도 정상에 가깝게 다가서 있다. 중국은 금융 산업이 낙후되자 이를 뛰어넘기 위해 핀테크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그래서 지금은 세계 10대 핀테크 도시 중 절반이 중국에 있다. 이제는 거리의 노점상도 모바일로 결제한다. 이처럼 중국은 기존 금융의 궤도를 넘어 핀테크로 퀀텀 점프를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핀테크는 많은 규제로 인해 다른 나라에 뒤처지고 있다.
최근에는 금융에 인공지능까지 가세했다. 한 컨설팅 회사는 인공지능으로 인한 금융의 ‘핵심 경쟁력’ 변화를 예측했다. 금융 자산의 규모, 고객 숫자 등의 규모 경제에서 AI·데이터 기반 확보,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개인 금융 비서 ‘챗봇’ 등을 활용한 초 맞춤 고객서비스, 개인과 AI와의 협력 역량 등의 금융 산업으로 변모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AI 만능 시대의 도래가 아닐 수 없다. 세계의 많은 산업이 시대의 변천에 따라 그 패러다임을 바꿔 왔다. 얼마 전 폐막한 ‘CES 2020(국제 전자제품 박람회)’에서 현대자동차도 완성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다. 하늘과 지상을 연결하는 ‘UAM(도심 항공 모빌리티)’을 포함, 차세대 ‘이동 서비스’의 플랫폼이 되겠다는 것이다. 자동차 회사의 개념을 바꾸는 대폭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그동안 ‘몸 만들기’에 주력해 온 부산 금융 중심지는 이제는 미래를 향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택하고 그 ‘핵심 역량’을 키워 나가는 데 집중해야 한다. 어차피, 미래의 대세는 AI와 블록체인이다. AI와 블록체인은 항만 물류, 관광산업과도 연계될 수 있다. 부산 금융 중심지가 핀테크를 넘어 AI와 블록체인을 핵심 역량으로 하는 ‘테크핀(Techfin)’개념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과거의 연장선이 아니라 미래 기술의 관점에서 금융을 선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금융이 ‘탈 금융’ 해야 생존하는 시대가 됐다. 이를 위해서는 컨트롤타워도 필요하다. 그래서 현재 추진 중인 ‘국제금융진흥원’의 컨트롤타워 역할이 기대된다. 이제라도 서두르지 않으면 부산의 국제 금융 도시의 꿈은 더 멀어져만 갈 것이다.
정구열 UN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본 칼럼은 2020년 1월 28일 부산일보 26면 ‘[중앙로365] 경자년, ‘부산 금융 중심지’ 도약의 해 되길’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