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미국 플로리다 남단의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다리 공사가 한창일 때다. 숙련된 많은 수중 용접사가 필요했다. 그런데 용접을 잘하는 사람은 수중 다이빙 능력이 없었다. 수중 다이버 대다수는 용접을 하지 못했다. 과연 용접사에게 다이빙 훈련을 시키는 게 좋을까. 반대로 다이버에게 용접 기술을 익히게 하는 게 나을까. 결론은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정부나 기업은 늘 ‘현재 잘하고 있는 일에 집중할 것인가’ 또는 ‘신사업에 도전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다. 세계적인 우량기업이었던 코닥은 자신들이 개발한 디지털카메라보다 당장 돈을 많이 벌어주는 필름사업에 집중하다 도산했다. 반대로 무리하게 ‘신성장 동력’만 부르짖다가 망한 기업도 상당수다. 수많은 변수 가운데 우선순위를 잘 결정하는 것이 훌륭한 리더다.
개인 역량 개발도 마찬가지다. 한정된 시간에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부는 강점을 더 크게 살리려고 한다. 약점과 강점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융합적으로 생각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방법은 없을까. 우리나라의 대표 산업인 제조업과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인 인공지능·빅데이터를 예로 살펴보자.
데이터는 21세기의 ‘원유’라고 불린다. 데이터 분석은 미래 핵심 기술 중 하나다. 전문가들도 ‘데이터 3법’ 국회 통과를 계기로 ‘데이터 경제시대’ 개막과 함께 새로운 비지니스 창출을 기대한다. 우리가 잘하고 있는 산업과 데이터를 결합하면 훨씬 더 큰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대한민국은 제조업이 국민총생산 (GDP)의 30%를 차지한다. 부산 울산 경남에 기반을 둔 조선·석유화학과 반도체 부문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제조업에 데이터 분석이나 인공지능을 덧입히면(융합)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지 않을까.
글로벌 인공지능 개발 기업들도 인공지능을 활용해 수익을 낼 수 있는 여러 방안을 모색 중이다. 그동안 적절한 수익구조를 찾지 못하다가 이제 제조업으로 눈을 돌리는 추세다. 제조강국인 대한민국이 이러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지금도 스마트공장이 확산하면서 생산설비 및 실적 데이터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낸 기업이 등장했다. 단순 반복 작업을 하던 인력을 재교육해 3D 프린팅을 비롯한 설계 인력으로 성장시킨 곳도 상당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설계도면과 생산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해 재작업과 수정 작업을 줄이기도 한다. 도면 해석부터 제작단계까지 시간을 절반 이상 단축시켜 원가 절감과 품질 향상을 동시에 이루거나 ▷데이터를 공유해 출고검사 정보와 입고 검사 절차를 줄이고 ▷재고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물류 이동을 최적화하고 ▷자산 최적화라는 결실을 거두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춰선 안 된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스마트공장은 생산성 향상에 집중해왔다. 생산·제조활동의 운영관리 및 공정의 ICT 융합을 통해 생산성·품질·납기 개선에 주력한 것이다. 앞으로는 공장과 공장 또는 수요-공급 체계 (Supply chain) 전체로 데이터 공유를 확대해 제조업 전반의 혁신을 이끌어내야 한다. 연구·개발·구매·생산·물류를 연결해 고객 중심의 설계를 하고 품질·운영비용이나 상품 출시 속도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뜻이다.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우선 스마트공장의 혁신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데이터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성공사례도 공유하자. 완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가치사슬에서 기업간 연계(connected enterprise) 역시 이뤄야 한다. 데이터 보안 문제도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이다. 중소벤처부가 최근 데이터 제조혁신 전략위원회를 발족해 데이터 공유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향후 데이터 공유가 폭넓은 제조 혁신으로 이어질 때 제조업이 3D 업종이 아니라 누구나 선망하는 도전적인 산업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스마트 산업도시 건설의 세계적인 모델이 되길 기대해 본다.
김동섭 UNIST 교수·경영공학부 학부장·4차산업혁명 연구소장
<본 칼럼은 2020년 3월 24일 국제신문 22면 ‘[과학에세이] 스마트공장의 의미 있는 변화’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