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가 아직도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고비는 지난 것 같이 보인다. 그동안 우리는 심한 고통을 겪었다. 단순히 질병에 대한 고통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경제적 충격이 크다. 가뜩이나 침체됐던 경제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중요한 경험도 얻었다. 그중 하나는 기초 체력의 중요성이다. 이번 코로나19 사망자는 주로 고령층 등 기초 체력이 취약한 계층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펀더멘털이 허약한 기업부터 도산 위기를 겪었다. 다른 하나는 두려움이다. 치사율은 그리 높지 않은 코로나보다 몇 배 무서운 것은 불확실성에서 오는 두려움이었다. 조그만 바이러스 하나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우리나라의 경제 펀더멘털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이미 약해지고 있었다. 저성장과 저물가의 기저질환이 있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0%로 전년(2.7%) 대비 26% 감소했다. 1인당 국민 총소득(GNI)도 3만2047달러로 4.1%(1387달러) 줄었다. 3만 달러 선에는 머물렀지만 4년 만에 첫 감소다. 주식시장도 침체됐다. 2019년 말 블룸버그 자료에 의하면 조사 대상 국가 86개국의 증시 시가총액은 전년 대비 평균 24.4% 증가했다. 우리나라 증가율은 3.4%로 86개국 중 58번째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로 그나마 체력이 소진됐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두려움’이 주는 경제 충격이다. 경제도 심리적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당시의 경제학자 케인스는 인간의 비합리적인 ‘야성적 충동’이 경기순환과 실업의 주원인이라고 했다. 2013년도 노벨 경제학 수상자이자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의 공저자 쉴러 교수도 기업가의 ‘심리적 요인’을 투자와 경제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최근의 행동경제학자들도 때때로 충동적이고 비합리적인 인간의 심리를 주요한 경제 변수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주는 교훈을 잘 새겨봐야 한다. 첫째, 경제의 기초 체력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규제를 혁파하고 투자 친화적인 정책으로 시장과 기업의 활력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규제가 우리나라 기업의 ‘야성’을 억누르고 있다. 얼마 전 법원에서 허용된 승차 공유 서비스인 ‘타다’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도 시장의 활력을 약화시킨다. 바이러스 피해에 대해 정부의 일시적 현금 지원은 어쩔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응급조치에 그쳐야 한다. 기업의 기초 체력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코로나 사태가 보여줬듯이, ‘디지털 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특히 중소·영세 기업이 디지털 인프라를 갖추도록 지원해야 한다. 학교도 전통시장도 ‘디지털’을 서둘러야 한다. 그래서 디지털 경제가 가속돼야 한다. 경제의 기초 체력을 키워야 미래에 다시 올지 모를 ‘보다 센’ 신종 전염병과 싸울 수 있다.
둘째로, 불안감의 해소다. 기초 체력은 장기적으로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선 시급한 일은 시장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이다. 미국의 대공황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이 노변담화(爐邊談話)를 통해 국민과 소통한 일화는 유명하다. 대통령이 주기적으로 방송에 나와 당시의 경제 상황을 국민들에게 솔직하고 차근하게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이럴 때 정부와 국민 사이에 상호 신뢰가 쌓이고 불안이 줄어든다. 정부가 ‘예측 가능’해야 불확실성이 해소된다. 경제에 비전문가인 정치인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를 할 때 국민의 불안감은 증폭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불안감으로 우리나라 주식시장 시가 총액은 1월 20일 첫 환자 발생 후 3월 19일 최저점까지 두 달간 무려 36%나 날아갔다. 우리나라 1년 예산(512조 원)을 훨씬 넘는 액수다. 시장의 공포가 경제를 추락시키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감염병 위기에서 국민들은 훌륭한 ‘시민 의식’을 보여줬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진정된다 해도 경제 위기는 아직 살아 있다. 위기일수록 정부는 국민과 진실하게 소통하여, 국민의 잠재된 능력을 끌어내야 한다. 이제 국회의원 선거도 끝났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경제에 올인해야 한다. 정치와 경제는 분리돼야 한다. 그동안 문제가 된 ‘경제 정책’은 경제성의 원칙에 따라 재검토하고 과감하게 수정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시장과 ‘경제적 거리’를 좁혀 기업이 다시 뛰게 해야 한다. 정책이 시장의 현실을 잘 반영해야 국민들이 공감하고 협조한다. 그래야 투자 심리도 소비 심리도 살아난다. 코로나19를 이겨 내는 데도 중소 바이오 기업의 진단 키트 개발과 국민들의 협조가 큰 힘이 됐다. 경제 회복을 위해서도 위기에 강한 우리 민족의 잠재력을 끌어내야 할 것이다.
<본 칼럼은 2020년 4월 21일 부산일보 22면 ‘[중앙로365] 두려움의 경제학’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