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실리콘 밸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만(San Francisco Bay)의 남쪽에서 시작됐던 실리콘 밸리의 혁신은 이미 상당히 북상해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진입해있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드랍박스(Dropbox) 등이 위치한 베이 남부로부터 북쪽으로 올라가면 오라클(Oracle)과 유튜브(Youtube)를 거쳐 샌프란시스코 시내 속에 진입한 트위터(Twitter), 에어비앤비(Airbnb), 리씨움(Lithium) 등의 새로운 중견 혁신기업들을 볼 수 있다.
실리콘 밸리 남쪽에서의 창업은 스티브 잡스(Steve Jobs)와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이 창업한 애플(Apple)의 경우처럼 차고에서 시작하는 거라지 벤처(Garage venture) 형태였다면, 차고는 커녕 주차공간도 부족한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올라오니 건물의 지하실로 창업의 열풍이 파고 들었다. 시내 차이나타운(Chinatown) 근처에는 몇몇의 벤처캐피털 투자자가 주관하는 볼트(Vault)라는 이름의 지하 창업실이 운영되고 있었다. 그야말로 허름한 지하실 벽을 허물고 200여 평의 공간을 만들어 창업자와 예비창업자 수십 여명이 모여서 미래의 회사를 만들고 있었다. 지금 유니스트 창업보육센터에서는 이 곳 지하 창업실에 들어갈 기술 창업팀을 선발하는 중이다.
시내에 위치한 트위터(Twitter) 건물 지하에는 볼트보다 더 큰 규모의 지하 창업실이 운영되고 있었다. 런웨이(Runway)라는 이름의 지하 창업실에는 80여개의 벤처들이 그야말로 비행기 활주로 같은 긴 복도 좌우로 차례 차례 배열되어 있었다. 복도 주변에는 조그만 부엌도 있고, 이글루(Igloo) 모양 재미난 회의실이 있었고, 복도의 끝에는 50여명 정도 행사를 치룰 수 있는 미팅 ‘광장’이 펼쳐져 있었다. 이들 지하 창업실은 창업 초기단계의 회사가 거주하는 공간으로서 이 회사들을 샌프란시스코의 엔젤 및 벤처캐피탈 투자자에게 연결해 주고 사업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자문을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이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다. 런웨이 운영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 온 창업가들이 있으며, 한국의 청년 창업가들도 입주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운영자는 한창 실리콘밸리에서 유명해진 와이컴비네이터(Y-combinator)에서 창업을 지원받은 경험이 있었다. 와이컴비네이터는 창업 초기의 회사를 돕는 시드 엑셀러레이터(Seed Accelerator)로서 벤처캐피털 투자와 함께 적극적인 경영 자문을 통해서 회사의 성장을 돕는, 투자자 겸 창업 지원업체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창업 지하실을 뒤로 하고, 남쪽으로 이동해 실리콘 밸리 중심에 위치한 마운틴 뷰(Mountain View)의 구글 캠퍼스를 방문했다. 그 곳은 회사라는 전통적인 느낌보다는 세계 각지의 다양한 민족/인종들이 북적 북적 모여 떠드는 종합 관광지 같은 느낌이었다. 야외에서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개를 산책시키며 조깅하는 사람들, 배구코트에서 홀로 스파이크 연습에 열중하는 사람, 회사에서 제공하는 자전거를 타고 이 빌딩에서 저 빌딩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구글 캠퍼스에 구경온 사람들과 섞여있었다. 캠퍼스 둘레 길에는 무인자동차(self-driving car)가 레이저 센서를 돌리며 시험운행하고 있었다. 그 곳에서는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구글의 자유로운 기업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창업의 산실인 실리콘 밸리의 혁신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어떤 이는 실리콘 밸리가 미국의 군수산업 투자에서 유래됐다고 하고, 어떤 이는 엔지니어들의 회사 간 이동을 가능케 했던 이 지역의 법제도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런데, 실리콘 밸리 창업의 근저에는 캘리포니아의 자유로운 문화, 소위 히피컬쳐(Hippie Culture)가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개인용컴퓨터(PC)가 도래하던 70년대 스티브 잡스는 거대한 기업군에 대항하는 해적(Pirate) 정신으로 애플을 창업했고,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은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검색의 기쁨을 주는 서치 알고리듬 (Search Algorithm)으로 구글을 시작했고, 마크 주커버그(Mark Zukerbug)는 친구 간 소통과 사회생활을 넓히려는 목적으로 페이스북(Facebook)을 창업했다. 이러한 기업들의 창업은 캘리포니아 특유의 자유분방함, 그리고 개성과 끼를 장려하는 독특한 문화에서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얼마 전 한 창업토크쇼를 본 적이 있다. 스타벅스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커피 대신 우리의 전통 차를 들고 다녔으면 하는 마음으로 창업을 했다던 한 젊은 창업가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그 젊은이에게서 느낀 창업의 향기는 새로운 사업을 해서 돈을 번다는 좁은 의미의 창업이라기보다는 내 인생을 스스로 개척한다는 넓은 의미의 창업 정신이었다. 좁은 의미의 사업과 당장의 이익에 집중하다보면 앞으로 닥칠 사업의 엄청난 고난 앞에서 좌절하기 쉽다. 하지만, 내 인생을 스스로 창출하고 개척한다는 넓은 의미의 창업 정신이라면, 힘든 고난도 헤쳐나갈 수 있는 장기적인 비전과 힘을 주지 않을까? 어찌 보면 창업을 한다는 것의 핵심은 정해진 기준에 맞춰 산다기 보다는 자기 스스로 삶의 기준을 창출해내는 것, 내가 나의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
김영춘 UNIST 경영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5년 7월 10일 울산매일 14면에 ‘실리콘 밸리와 창업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