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세계 주요 도시들에서 주거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실직, 폐업, 소득감소가 일반화되면서 다수의 월세 세입자들이 월임대료를 지불하지 못하고 퇴거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해외 많은 국가와 도시들은 임차인의 주거안정을 위한 퇴거유예(eviction moratorium)제도를 시행하여 코로나19 경제상황으로 인한 주거위기가구에 대한 강제퇴거를 금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일각에서는 임차인의 주거안정 강화를 위하여 전월세신고제, 전월세상한제, 장기간 계약갱신청구권을 골자로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울산은 이러한 주거위기가구 지원 및 서민주거 안정 논의에서는 한 발 물러서 있는 듯 하다. 코로나19로 인해 긴급복지지원제도 집행 예산이 확대된 것 외에는 이렇다할 주거지원대책이나 논의가 전무한 것이다. 울산의 경우 코로나19 확진자수가 타지역보다 적고, 주택가격이 서울이나 수도권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주거위기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적게하면 확진자수가 적게 나와 전염병의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주거위기 문제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몇 년간 지속되고 있는 지역경제 침체를 고려해 볼 때 주거위기가구의 목소리가 제대로 대변되고 있지 못하여 지역 내 주거취약계층의 주거위기 문제가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주택시장과 주거안정 상황을 진단할 때 주거 수요와 소요를 체계적으로 파악하여 정책을 수립하여야 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수요(demand)는 ‘어떤 재화나 용역을 일정한 가격으로 사려고 하는 욕구’를 의미하고, 소요(need)는 ‘필요로 하거나 요구되는 바’를 의미한다. 즉, 주택수요는 주택시장에서 구매력이 있는 가구가 주택을 구매 혹은 임차하려는 것을 말하며, 주택가격이나 주택거래량 등 주택시장지표를 통한 모니터링과 인구통계학적 변화에 기반한 수요예측을 통하여 분석과 진단이 가능하다.
한편, 주택소요는 가구의 구매력과 무관하게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주거를 의미한다. 인간의 기본권인 주거권 관점에서 볼 때, 공공이 주거복지 차원에서 시장에 개입하여 구매력이 없거나 부족한 주거취약계층에게 부담가능하고 적절한(affordable and adequate) 주거를 제공함으로써 주택소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주택소요의 경우, 주거취약계층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체계적으로 주거정책에 반영되기 어렵다.
울산의 주거위기가구의 주거소요를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울산도 ‘주거복지센터’를 빠른 시일 내에 설립·운영할 필요가 있다. ‘주거기본법’에 의하면, 지방정부는 주거복지 관련 정보제공 및 상담 서비스 등을 제공하기 위하여 주거복지센터를 설립할 수 있다. 서울시는 이미 25개 자치구마다 각 1개소의 주거복지센터와 중앙주거복지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경기도, 대구 등 다른 광역자치단체도 최근 주거복지센터 운영을 시작하였다. 주거복지센터는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위한 정보 제공 기능 뿐 아니라, 울산형 주거복지 지원사업 수행 기능과 주거취약계층의 다양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금융상담, 법률상담 등 지원서비스연계 기능을 담당함으로써 시민들의 주거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마침 울산시는 2030년 울산광역시 주거종합계획을 수립 중에 있다. 주거종합계획 내 주거복지센터 설립·운영을 위한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마련하여 적극적인 예산반영과 설립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의 도시계획가인 폴 다비도프(Paul Davidoff)는 도시계획가는 저소득층, 소수인종 등 사회에서 대변되지 못하는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는 옹호계획(advocacy planning) 이론을 주창한 바 있다. 주거복지센터는 현장에서 시민들의 다양한 주거요구를 듣는 핵심 기관이자 주거 부문의 옹호계획의 역할을 수행할 전문기관으로서 시민들의 주거복지향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섭 UNIST 도시환경공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20년 6월 23일 경상일보 14면 ‘[경상시론] 울산도 주거복지센터가 필요하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