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이틀 전인 14일 ‘한국판 뉴딜’에 대한 국민보고 대회에서 뉴딜에 대한 구상과 계획을 발표했다. 데이터 댐, 인공지능 정부, 스마트 의료 인프라, 그린에너지,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 등 10대 대표 사업을 통해 경제를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전환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튼튼한 고용·사회안전망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데이터 뉴딜과 그린뉴딜 두 축에 중점을 둔 것은 포스트 코로나 이후 4차 산업혁명과 기후 변화라는 시대적 요구를 잘 반영했다고 본다. 그러나 뉴딜의 성공을 위해서는 구체적 실행 의지, 법과 제도의 정비, 2025년까지 5년간 국고 114조 원을 포함해 160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지출의 효율성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뉴딜은 1930년대 미국 대공황 때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으로 대표된다. 이는 테네시 계곡 개발 토목 공사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노동권의 강화, 금융 시스템의 현대화 및 사회보장제도의 구축 등 일련의 ‘경제·사회적인 대개혁’이었다.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으로 고통받는 ‘잊혀진 사람(the Forgotten Man)’을 위한 사회적 구제 정책으로 후세 사람들이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잊혀진 사람〉의 저자 애미티 슐래스는 뉴딜 정책이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공황은 상당 기간 지속하고 실업률도 예전보다 높아졌다고 비판한다. 그런데도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이 자본주의 위기를 넘긴 제도적 개혁이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잊혀진 사람’이란 원래 19세기 미국의 사회학자인 윌리암 섬너 교수가 처음 쓴 용어로 소외된 사람을 의미한다. ‘갑’이 약자인 ‘을’을 위해 무엇을 할지를 결정한다. 하지만 이를 실제로 부담하는 것은 ‘병’이다. ‘병’은 열심히 일하며 세금도 내는 평범한 시민이다. 그러나 이들을 대변하는 정치인은 별로 없다. 섬너 교수는 이러한 사람들을 ‘잊혀진 사람’이라고 했다. 반면에 루스벨트의 ‘잊혀진 사람’은 구제가 필요한 취약계층이었다. 정부가 시장 개입을 통해 이들을 구조했다. 루스벨트는 시장의 반발을 특유의 소통 리더십으로 새로운 딜을 이뤄냈다. 그래서 그가 당시 라디오로 행한 국민과의 노변정담(爐邊情談)은 아직도 많이 인용된다.
‘잊혀진 사람’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바뀔 수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3년 전 취임 연설에서 중부 공장 지역, ‘러스트 벨트’의 저소득층 백인 노동자들을 ‘잊혀진 사람들’(forgotten men and women)이라고 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 기반이었으나 민주당에 의해 무시됐다.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가 이들을 기억해주고 이들로 인해 선거에 승리했다.
정부는 이번 한국판 뉴딜이 불평등 사회에서 포용 사회로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시한다고 했다. 따라서 이번에 발표된 한국판 뉴딜에서 ‘잊혀진 사람들’은 없는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에 있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규제와 노동 시장 경직성’이 많이 지적된다. 이 두 가지 문제가 선결돼야 한국판 뉴딜도 성공할 수 있다. 한국판 뉴딜의 ‘잊혀진 사람’은 이러한 규제와 경직된 노동시장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다. 이들은 소위 귀족노조에 가입된 소수의 대기업·공공기관의 고임금 노동자는 아니다. 연공서열제에 안주하고 있는 기득권 근로자들도 아니다. 중소기업에 ‘갑’으로 군림하는 대기업은 더욱 아니다.
‘잊혀진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살고자 시장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뛰고 있는 중·소 상공인 및 자영업자들, 노력에 대한 ‘공정한’ 대가를 믿고 희망을 가지고 취업 준비를 하는 청년들, 노조에도 가입하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90%에 가까운 근로자들이다. 이들은 발언권이 별로 없다. 대변해주는 정치인도 별로 없다. 그래서 잊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퍼주기 식 복지도 바라지 않는다. 일한 만큼 벌고, 번 만큼 세금도 내고자 한다. 그러나 ‘타다 금지법’으로 창업 의지가 좌절되고, ‘인천공항’ 사태에서 노력의 공정한 대가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 그리고 사회에 만연한 공짜 분위기에 일할 의욕도 사라져 간다.
사회보장제도가 미비한 우리나라에서, 당장 생계가 막힌 실업자, 노년 빈곤층은 당연히 구제해야 된다. 그러나 40%의 근로자가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낸다. 일본의 두 배가 넘는다. 한국판 뉴딜은 ‘각자의 시장’에서 성실히 뛰고 세금도 내는 ‘잊혀진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규제도 과감하게 풀고 노동 시장의 경직성도 완화해 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정부 주도형만으로는 안 된다. 시장이 살아나야 한다. 그래서 한국판 뉴딜은 ‘모두가 일하는’ 뉴딜이 되어야 한다. 행여나 인기에 영합해 ‘나눠주는’ 뉴딜이 돼서는 안 된다. 이번 한국판 뉴딜을 통해 우리 사회에 창조와 혁신의 ‘기업가 정신’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란다.
정구열 유니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본 칼럼은 2020년 7월 16일 부산일보 22면 ‘[중앙로365] 한국판 뉴딜 ‘잊혀진 사람’ 생각해야’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