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을 대상으로 인공지능 특강을 하게 될 기회가 종종 있는데 인공지능 사례들을 중심으로 설명을 하다 보면 공통적으로 받는 질문이 있다. 그 질문은 바로 “인공지능이 비록 보고 듣는 인지 능력이나 체스, 바둑과 같은 연산 능력에 대해서는 인간과 비슷하거나 뛰어날 수 있을지라도 창작 활동, 공감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영역이므로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지 않냐”는 것으로,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궁금함으로 보인다.
그 때마다 안타깝지만 이미 그러한 창의성, 공감 능력에 대해서도 인공지능이 인간과 겨룰 수 있는 수준까지 머지 않아 기술이 발전할 것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그동안 해온 수많은 창작 활동의 결과물을 입력 데이터로 받아 학습해 창작 활동을 모방하는 인공지능은 이미 보고되고 있으며 앞으로 지속적으로 관련 기술은 고도화될 것이 분명하다.
수많은 기보를 입력 데이터로 받아 바둑의 룰, 기술, 승리와 패배의 패턴을 학습해 인간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알파고와 마찬가지로, 기존에 발표된 수많은 악보들을 입력 데이터로 받아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 내는 인공지능도 얼마든지 개발 가능하다. 많은 악보들을 통해 곡을 구성하는 데에 필요한 규칙이나 패턴을 학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작 활동은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가 아니며 변동성이 크고 확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사람)전문가의 것과 비교했을 때 아직 수준의 차이는 분명 있지만 여기서의 핵심은 인간의 창의성과 공감 능력 역시 인공지능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다 걱정스러운 소식은 이렇듯 일반적으로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을 인간의 고유의 속성을 꼽아보라고 하면 쉽게 떠오르는 창의력과 공감 능력, 그리고 감정 역시 모방할 수 있는 인공지능일지라도 이는 ‘약한 인공지능’이라는 것이다. 특정 과업에 대한 인간의 인지적인 능력을 한정적으로 가진 인공지능을 약한 인공지능이라고 한다.
이에 대비되는 ‘강한 인공지능’이란 인간과 같이 현상을 지각하고, 사유하고 판단하여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인간과 모든 면에서 동일하게 표현되는 인공지능을 의미한다. 즉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다. 이러한 강한 인공지능의 탄생 여부와 도래 시기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의견은 첨예하게 갈리지만 이것이 현실화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과연 강한 인공지능과 비교했을 때 인간을 정의하는 핵심은 어디에 있을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그러면 결국 물질에 기인하는 육체라는 답이 떠오르게 되는데, 팬데믹 시국에 대면보다는 비대면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빈도가 잦아짐에 따라 인간의 육체를 직접 보지 않는 한 나와 비대면으로 대화하고 있는 너머의 누군가가 인간이라고 확신을 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특수성에 대해 논하는데 인공지능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 인간이 인간임을 규정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 그 어느 때보다도 깊고 넓게 논의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것이 인공지능을 이용해 적대적인 공격을 하는 것으로부터 인간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같은 인류임에도 불구하고 구분되었던 백인과 흑인, 남자와 여자가 더불어 살아가는 시대로 변모하고 있는 것처럼 종의 경계를 뛰어 넘고 인간과 인공지능이 양립할 수 있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이러한 여정에는 우리네 역사에 기록되어 있듯 무수히 많은 풍파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무엇도 아직까지 지구에서 인간이라는 종을 능가하진 못했으며 인간은 인간이 지구의 주인 자리를 다른 존재와 공유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대가 어느 순간 갑자기 도래하였을 때 인간이 인공지능 또는 이를 탑재한 기계와 어떻게 양립할 것인지에 대한 대비가 없다면 언젠가 강한 인공지능이 이 세상 모든 인류의 지성을 합친 것보다 똑똑한 ‘초인공지능’으로 진화했을 때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인간이 기계에 잠식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이러한 시대가 오지 않으리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상상에 기반한 사유를 통해 강한 인공지능의 시대, 나아가 초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해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생 방안에 대해 잠시나마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이정혜 UNIST 산업공학과 교수‧ 인공지능 기반 헬스케어 분야 연구
<본 칼럼은 2021년 2월 24일 경상일보 14면 ‘[경상시론]인간과 인공지능이 양립 가능하려면’ 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