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양한 괴롭힘 관련 폭로 소식이 들려옵니다. 운동선수에서 연예인으로 번진 학교폭력이나 간호사의 직장내 괴롭힘 뉴스가 대표적입니다. 영국 왕실에서 태어날 아기의 피부색을 언급하며 차별을 받았다는 인터뷰를 수천만명이 시청했습니다. 코로나 영웅으로 인기 높던 미국의 주지사가 연이은 성희롱 폭로로 수사 대상이 됩니다. 위 사건들처럼 서로 아는 사이로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상황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한 번의 만남에서도 큰 상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제약회사의 면접에서 후보자가 차별 대우로 받은 상처가 컸다고 합니다. 수개월 뒤 회사의 호재가 될 수 있었던 동영상에서 댓글을 통해 이 일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었으면 시간이 한참 지난 일들을 잊지 못할까 싶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강경 대응을 선언하기도 하고, 인정하고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자신이 한 일이 아닌데 피해자의 착각이나 오해로 가해자로 지목받는다면, 그래서 이제까지 쌓아온 것들이 한 순간에 무너진다면 참 억울할 것 같습니다.
인간은 다른 인간을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힐 수 있습니다. 신체적 폭력을 쓸 수도 있고 언어로 괴롭힐 수도 있습니다. 무리에서 따돌리기도 하고 금전적 불이익을 주거나 심부름을 시킬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학교폭력도 교묘해져서 상처나 멍이 드러나지 않도록 때리는 등 증거가 남지 않는 방법이 늘었다고 하지만 전형적인 경우면 누가 나쁜 행동을 했는지 쉽게 판단이 됩니다.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고 욕을 하면 안 되고, 상대가 욕을 한다고 때리면 안 됩니다. ‘맞을 짓’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싫으면 말로 하면 됩니다. 욕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애매한 지점들이 있습니다. “아기의 피부톤이 밝고 깨끗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은 애매하지만, “흑인의 피부색이면 왕실에 누가 될 텐데 걱정이다”라는 말은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인사부서 직원으로서 군 경력을 호봉에 반영하는 정책에 대해 논하라”는 면접 질문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군필자에게만 군에서의 경험과 어려움을 극복한 사례를 통해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다른 후보자에게는 대응되는 발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차별로 느껴질 것입니다.
이런 차이는 신체 접촉에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언어소통이 어려운 상황에서 비숙련자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 어깨를 툭툭 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말로 해도 되는 상황에서 감싸 안 듯 어깨를 만지작거리면 상대는 불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맞았던 사람이 쉽게 때리는 것처럼, 자기도 모르게 따라할 수 있기에 이 차이를 알아차리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 피해자가 오해를 한 것이라면 어떨까요? 인간의 기억은 자신의 감정에 의해 각색됩니다. 우울증이 심하면 나를 쳐다본 것뿐인데 비난하는 환청을 듣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괴롭힘으로 우울증이 생겨 함께 있었던 다른 사람을 오해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 마음의 상처가 쌓이면 불안, 우울, 무기력 등으로 힘들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잊었다가도 가해자의 소식을 들었을 때 상처가 쓰라립니다. 괴롭힘에 대해 능동적으로 맞서길 권합니다. 바로 항의할 수 없다면 증거를 모아두고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과 상의해야 합니다. 친구나 가족에게 말하기 어렵다면 전문가를 만나도 됩니다. 적어도 적극적으로 맞설 문제인지, 작은 문제여서 속상함만 풀고 넘어갈 것인지 분류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상대에게 사과를 받으면 좋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면 나의 속상함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됩니다.
주변 사람들도 도와줘야 합니다. 항상 피해자의 말이 다 맞는 것은 아닙니다. 사이코패스 같은 가해자가 있는 것처럼, 있지도 않은 피해사실을 만들어내는 성격장애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변에서 아픔을 호소한다면 외면하지 않고 들어주길 바랍니다. 어느 연예기획사에서 피해자를 만나 양쪽의 말을 경청하고 사과하는 노력을 했던 것에 주목하게 됩니다. 피해자에게 필요한 것은 가해자의 몰락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에 대한 공감입니다. 내가 괴롭힘을 목격했을 때 그 자리에서 직접 돕지 못하더라도 피해자를 지지한다는 뜻을 보여주면 큰 힘이 됩니다. 누군가를 돕는 행동은 자신의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본 칼럼은 경상일보 2021년 3월 12일 19면 ‘[정두영의 마음건강(13)]괴롭힘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하는 자세’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