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진흥원에서 ‘시민사회 정신건강 증진과 편견의 해소, 사람들은 왜 정신과에 가지 않을까?’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진행되었습니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10대는 대학입시에서, 20~30대는 취업에, 30~40대는 보험 가입에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을 한다고 합니다. 자격제한과 차별금지에 대한 법조항을 발표하는 로스쿨 교수는 시험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로스쿨 학생들에게 치료를 권해도 공무원 채용을 걱정하며 가지 않았다며 아쉬워하더군요.
저는 대부분 이공계 학생을 대하니 조금 설명이 쉬워집니다. 일단 학내에 있다 보니 쉽게 찾아오고, 망설였다가도 주변의 입소문을 듣고 안심합니다. 정신과 병의원으로 안내를 할 때는 건강보험진료를 받더라도 국정원 같은 곳에 취직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기업, 국책연구소, 대학교수로 채용될 때 의무기록 조회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줍니다. 사보험도 이미 가입한 것은 상관없고, 앞으로 가입을 하게 된다면 가입일 전 3~5년간 정신과를 다닌 기록이 없으면 된다고 말해줍니다.
우리 사회의 제도를 반영하는 법을 조금 들여다보면 명칭부터 혼란스럽습니다. 정신건강복지법에는 “정신질환자란 망상, 환각, 사고(思考)나 기분의 장애 등으로 인하여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중대한 제약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라 하니 의료인, 아이돌보미를 비롯해서 가축수정사까지 직업에 제한을 두는 것은 한편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공무원 채용신체검사서에 들어 있는 ‘정신질환’ 항목에 대해서도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정도의 질환에 대해서만 묻는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안질환’에 근시로 안경을 쓴다고 적지 않고, ‘피부질환’에 여드름을 적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불안하고 잠을 잘 못자지만 혼자 씻고 밥 챙겨 먹을 수 있는 정도면 적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사실 국정원 같은 곳이 아닌 일반 공무원, 공공기관 취업에서 정신과 진료이력은 조회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판검사나 고위직의 경우는 국정원 신원조회 등이 있어 경우가 다릅니다. 올해 3월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법무부 장관에게 검사 채용 신원진술서에 정신질환 전력에 관한 문항을 삭제하도록 권고했고 법무부는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지원자는 정신질환 등 정신건강상 이유로 의료기관의 진료를 받거나 상담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와 같은 질문이 있어 로스쿨 재학생이 지난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싶지만 임용에 불이익을 받을까 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인권위는 선발에 불이익을 줄 수 있고 질문이 추상적이며 현재가 아닌 과거의 일까지 조사하는 것은 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판사인 지인에게 물어보니 판사들도 신규임용 때 질문을 받았고, 현재도 정당 활동이 의심되거나 큰 금액의 거래가 있으면 조사받으니 스트레스를 받아도 인사에 불이익이 있을까 걱정되어 정신과에 가는 것을 꺼려한다고 합니다.
채용검사에 법정전염병 등이 포함된 것은 쉽게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기침, 피부발진 등의 증상으로 내과나 피부과에 간 적이 있는지 제출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범위도 모호하고 현재와 상관없는 일이 더 많으니까요. 스포츠선수에게 정형외과나 재활의학과 방문 경험을 묻는 것은 어떨까요?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부상 이력이 아니라면 오히려 몸 관리를 잘 하는 선수로 평가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진료나 상담 경험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업무에 불리하다는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저 또한 제 연구실 대학원생을 뽑을 때 이런 맥락으로 판단합니다. 저희 센터의 비율로 치면 도움을 받으러 찾아오는 학생이 100건일 때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법에서 말하는 ‘정신질환자’는 1건 정도입니다. 이 경우는 대개 기숙사 등에서 사건사고로 의뢰되는 경우이며 직접 찾아오는 경우는 드뭅니다.
반대의 면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이고 반사회적인 동료나 상사로 인해 피해를 입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둘 중에 누가 자의로 정신과를 이용하게 될까요? 사실 둘 다에게 필요하지만 스스로 이용을 원하는 사람은 피해를 받은 사람입니다. 만약 채용을 하는 쪽에서 정신과 이용 경험만으로 선발을 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본 칼럼은 경상일보 2021년 6월 11일 19면 ‘[정두영의 마음건강(16)]정신과 경험이 있는 취준생은 일을 잘 못 해낼까’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