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민의 염원으로 탄생한 UNIST는 올해 영국의 대학평가기관 THE가 발표한 세계 신흥대학평가에서 세계 10위에 올랐다. 개교 12년 만에 세계에서 열 손가락에 드는 젊은 대학이 된 것이다. 눈부시게 성장한 UNIST에는 세계적 연구자들과 함께 공부하길 꿈꾸는 국내외의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든다. 이렇게 UNIST는 울산에 새로운 인력을 끌어들이는 자석이 됐다.
매년 약 1,000명의 학생이 UNIST에 입학한다. 학부생이 400명, 대학원생이 600명 정도다. 이들은 과학기술 분야의 고급인재들이다. 우수한 이공계 교육을 받기 위해, 또 최고 수준의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타 시도에서 울산에 찾아온다. 2021학년도 학부 신입생 모집결과를 보면, 전체 378명 중 89%가 울산이 아닌 지역에서 왔다. 이중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서 울산으로 온 학생들이 전체의 26%다.
UNIST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짧게는 4년, 길게는 10년을 울산에 머문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학생들은 졸업 후에 UNIST와 울산을 벗어나고 싶어 하고, 실제로 떠난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이들이 졸업 후 근무할 연구개발 관련 분야의 일자리가 적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울산에서의 생활에 갑갑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애써 끌어들인 인재들을 다시 떠나보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이들이 도시의 발전과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이 인재들이 울산에 남아 도시와 함께 성장할 수 있다면 울산은 새로운 동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유능한 인재들은 미래를 선도하는 도시에서 특별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500명을 목표로 시작해보자. 500명은 매년 UNIST를 찾아오는 1,000명의 절반이다. 이 500명을 울산에 머물게 할 수 있다면, 울산의 미래는 크게 바뀔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나와 있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매력적인 문화를 가진 생활터전을 조성해야 한다. 이 500명을 움켜쥐기 위한 UNIST의 노력은 이미 시작됐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기술창업을 활성화하고 있고, 학생들이 머물고 싶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주목할 성과도 적지 않다.
조재필 교수가 창업한 ‘에스앰랩’은 최근 울산경제자유구역에 1,215억 원을 투자해 이차전지 소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실험실의 기초연구에서 시작한 이 기업은 시장에서 향후 1조원의 가치를 지닐 것으로 예상된다. 게놈 분야의 앞선 연구력을 기반으로 창업한 ‘클리노믹스’는 UNIST 창업기업 최초로 코스닥에 상장됐고, 현재 기업가치가 2,300억 원 정도다.
이들은 모두 울산에 자리 잡아 신산업의 틀을 다지고 있다. 학생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의료기기를 개발해 미국 FDA에서 3상 평가를 받고 있는 ‘리센스메디컬’, 이산화탄소로 유용한 물질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는 ‘GT’ 등 눈에 띄는 창업기업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UNIST의 첨단 기술을 이용해 창업에 도전할 사람들이 더 늘어난다면, 이런 흐름은 점점 가속화될 수 있다.
좋은 일자리만큼 중요한 것이 도시의 문화다. 살고 싶고, 머물고 싶은 문화가 있어야 한다. 선바위지구에 과학문화마을을 조성하고, 매력적이고 세련된 문화를 입혀나가야 한다. 첨단 스마트 그린도시를 밑그림으로, 매력적인 생활터전을 만들자. 휴양지에서나 느낄 수 있던 여유가 가득한, 예술가들의 공연과 전시가 끊이지 않는 그곳에는 멋진 카페와 음식점도 많았으면 좋겠다. 태화강을 바라보는 와인 바에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어떨까.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삶의 공간, 누구나 찾아오고 싶은 도시로의 변화는 여기서 시작될 것이다.
UNIST 안에서도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교내에 호수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펍을 만들었고, 도서관 1층에는 북 카페를 조성할 계획이다. 학생들의 건강을 증진하고, 첨단 헬스케어 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UNIST 클리닉을 설치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여기 세 도시가 있다. 영국의 옥스퍼드, 독일의 마인츠, 미국의 보스턴. 이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수한 연구중심대학이 있다는 점, 뛰어난 연구를 바탕으로 한 벤처창업의 열기가 뜨겁다는 점, 그 혁신 동력을 바탕으로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옥스퍼드대학 제너연구소에서 시작됐다. 화이자와 함께 세계 최초로 mRNA 방식의 백신을 개발한 바이오엔테크는 마인츠대학의 교수였던 우구르 사힌 박사가 창업한 회사다. 모더나 백신은 MIT와의 협업을 위해 조성된 바이오 랩센트럴에서 탄생했다.
그러고 보니 세 도시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구가 늘어나는 도시라는 점이다. 매력적인 도시는 늘 사람을 끌어들인다. 울산이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매년 500명의 UNIST 졸업생이 울산에 남을 수 있다면, 10년 뒤에는 5,000명의 고급인재가 울산에 자리 잡게 된다. 이들이 가진 에너지와 활기는 울산의 혁신성장을 힘차게 끌어올릴 뿌리가 될 것이다.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울산을 이끌어나가는 분들께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나가자고 제안하고 싶다. 지역 언론의 역할도 크다. 창간 30주년을 맞은 울산매일신문의 역할에 기대를 걸어본다.
이용훈 UNIST 총장
<본 칼럼은 2021년 7월 19일 울산매일 27면 ‘[특별기고] 세계적인 도시엔 세계적인 대학이 있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