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델타 등 변이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인류와 코로나가 공생할 수밖에 없는 위드 코로나 시대가 됐다. 앞으로 백신의 변신에 따라 해마다 새로운 바이러스에 맞춘 백신을 맞으며 살아야 할 것이다. 백신만 제때 맞으면 코로나에 걸리더라도 가볍게 지나간다니 곧 감기나 독감처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변화 문제도 코로나처럼 인류를 끊임없이 공격할 것이기에, 2050년까지 이뤄야 할 탄소중립은 현대판 30년 전쟁으로 불릴 만하다. 이달 초 국회는 지난 250년간 산업혁명을 뒷받침해 온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의 화석연료의 사용을 2050년까지 모두 중단하고, 숲이 흡수할 수 있는 수준의 이산화탄소만을 허용하는 탄소중립기본법을 통과시켰다.
이처럼 중대한 시국에 탄소중립위원회가 원자력을 퇴출시키고 재생에너지를 대폭 확대하되 부족한 전기는 수입하겠다는 무책임한 초안을 내밀었다. 세계 최고의 한국에너지 산업을 50년 전으로 되돌리고, 주요 기간산업을 주저앉힐 경악할 안이다. 일례로, 미래의 연료인 수소가 매년 천만톤 이상 필요하며, 대형 원자력발전소 40기에 맞먹는 재생에너지로 만들겠다는 말이니, 국민이 숫자까지 짚어 보아야 할 사건이 터진 것이다.
특히 울산은 국내 최초로 탄소중립 도시를 선언하고 해상풍력산업, 수소산업 그리고 이산화탄소 저장기술 개발도 이끌고 있다. 우리나라의 탄소중립이 성공하려면,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계획을 울산이 바로 세워야 한다. 100년 전 아인슈타인은 원자력이 모든 에너지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밝혔고, 지금은 이를 명심할 때다. 태양광은 핵융합이며, 풍력, 수력, 바이오에너지는 태양광의 2차 에너지들이다. 지열은 지구 속의 방사성 물질이 내는 핵붕괴에너지이다. 재생에너지는 다름 아닌 자연 속의 원자력인 것이다.
방대한 국토를 가진 강대국들은 인구밀도가 낮아서 태양광, 풍력, 수력, 지열 등 자연산 원자력인 재생에너지를 많이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점점 심해지는 기후변화와 재해에 따라 생산량이 예측할 수 없으니, 첨단 산업에 필요한 안정성과 경제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에너지는 원자력이니, 이의 안전성을 부단히 개선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탄소중립 대책으로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첨단 산업이 활발한 나라일수록 재생에너지보다 안전한 원자력을 더 중시할 것이다. 재생에너지 100%를 주장하는 독일이 뒷문으로 주변국의 원자력 전기를 수입하는 실상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세계는 더욱 안전한 첨단 소형 원전의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대형원전보다 출력이 훨씬 작은 소형원전은 후쿠시마와 같은 복합재난이 발생해 모든 안전장치가 고장 나더라도 원자로 멜트다운이나 수소 폭발이 없이 자연적으로 식히고, 위험한 방사능 유출을 막는 것을 필수 요건으로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소형 원전이란 마치 커다란 냉각장치가 필요한 대형 컴퓨터 대신, 작은 프로세서를 여러 개 연결해 같은 성능을 내면서도 공기로 자연적으로 냉각되도록 만든 멀티코어 컴퓨터와 같다. 작고 간단한 멀티코어 컴퓨터는 생산비용도 크게 절감된다. 이와 같이 소형 원전도 작은 모듈들을 공장에서 완성하고 현장에서 조립해 사용한다면 토건 비용을 크게 줄임으로써 경제성도 높일 것으로 본다.
세계적으로 개발 중인 약 100종에 달하는 소형 원전 중에서 미국, 러시아, 유럽이 제일 앞서 나가서, 물보다 더 안전한 냉각재를 사용하는 제4세대 원전기술을 소형화하고 있다. 제4세대 원전기술로서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해 경제성도 올리고, 고준위폐기물 문제까지 해결함으로써 안전성과 함께 지속가능성까지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벨기에, 영국, 러시아, 중국, 스웨덴, 이태리가 집중하고 있는 납냉각 고속로가 이중에서 가장 유망하다.
납냉각 소형원전은 기록적인 잠항 속도로 기네스북에 오른 소련의 알파 핵잠수함에서 상용화된 것이다. 최근 울산과학기술원을 중심으로 한 연구단이 저농축 우라늄으로 핵연료의 교체없이 40년 이상 가동할 수 있는 납냉각 소형원전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미국도 전체 수명인 45년간 핵연료 교체없이 가동하는 핵잠수함을 개발했지만, 핵무기급의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므로 상용화할 수 없다. 농축도 20%이하의 저농축 우라늄만 상용에 허용되므로, 수년마다 핵연료를 교체해야 하는 고질적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이로써 소형 원전 비용을 크게 낮추고 안전성을 더 높여 탄소중립 대책에 탄력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 부유식 해상풍력으로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이 각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수소는 항만, 공항과 임해공단에서 주로 사용될 것이므로 해상 생산 기술이 더 적합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먼 바다조차 유럽만큼 바람이 세지 않은 데다, 송전 비용은 높아서 경제성 확보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수소산업의 경제성을 높이는 데 원전의 활용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영국 에너지전문기업인 루시드 카탈리스트사의 분석에 주목할 때다.
해상 풍력과 소형 원전의 융합은 미래 조선-해양 및 우주산업으로 연결된다. 예로서, 코로나의 여파로 조선 기자재 공급망이 흔들리자, 북구의 전통적 해양 선진국들이 아시아에 의존해온 조선-해양 설비산업을 자국으로 회수(Reshoring)해 벌써 원자력 바지선과 원자력 선박을 개발하고 조선-해양 탄소중립이라는 블루오션을 준비 중이다.
탄소중립의 30년 전쟁에 포성이 울렸다. 울산 시민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 해상 풍력발전과 이산화탄소 저장사업을 지휘할 한국석유공사의 김동섭 사장은 최근의 취임사에서 불확실한 시대에 가장 현명한 길은 바로 미래의 창조라는 피터 드러커의 말을 인용했다.
탄소중립에서 승전을 위해 울산이 부산시, 경남도와 머리를 맞대고 시민 공론화와 이를 바탕으로 한 조선-해양-원자력 융복합 산업이라는 비장의 무기를 준비하기 희망해 본다.
황일순 UNIST 석좌교수·세계원전수명관리학회장
<본 칼럼은 울산매일 2021년 9월 17일 14면 ‘[황일순칼럼] 탄소중립과 소형원전’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