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넷플릭스라는 미디어플랫폼 사상 최고의 한국드라마 흥행작이다. 음악, 음식, 기술, 제품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영화에 이어 드라마까지, 굉장한 대한민국이다. 파리의 오징어게임 체험장은 매일 만원이고, 달고나 만들기 세트가 세계 온라인 히트 상품이다. 어디에나 오징어게임은 세상천지 만개한 이야기 꽃밭이다. 이유는? 스토리가 우리 삶을 은유하기 때문이다. 직유가 아닌 탓에 분석도 각양각색이다.
어떤 디자이너의 특별한 분석은 CMYK색상으로 풀어낸 스토리다. C는 약자, M은 시스템, Y는 돈, K는 지배자다. 색상 혼합이 스토리가 되는데, 파란색(Cyan) 딱지를 치는 약자가 돈(Yellow)을 좇아 게임에 참가하면 초록색(트레이닝복)이 된다. 진홍색(Magenta) 점프수트 일꾼이 돈(Yellow)을 좇다 발각되면 붉은색(피=죽음)이 된다. 지배자는 약자(피지배자), 시스템(룰), 돈까지 모두 합한 검정색(K=black)이다. 시스템을 잡겠다고 다짐하는 주인공의 머리색은 진홍색(Magenta)으로 변해있다. 천재같은 분석이다.
필자의 주제는 시대의 전개다. 등장인물은 특정 성격, 부류, 계층이고 게임은 룰에 의한 사회다. 얽히고 풀어내는 스토리는 사회의 시대별 전개와 맞아 떨어진다. 사람들이 계약서서명을 통해 게임 참가자로 신분이 변하는 것은, 근대(구한말, 일제시대)에서 현대(대한민국)로의 시대 변화다.
첫번째 게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집단통제 시대다. 1960~1970년대 군사·권위주의 정부는 강한 통제 시스템으로 사회를 훈육했다. 따르면 살려주고, 어기면 처벌(죽음, 게임 탈락=도태)했다.
두번째 게임 ‘달고나 뽑기’는 1970~1980년대, 기술의 시대다. 재화와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인력이 부를 창출하는 중요한 수단이어서, 국가가 개인의 기술개발, 학습, 연구를 독려했다. 바늘을 잘 쓰는 손기술(기술자)이나 혀로 핥아 녹이는 머리(연구자)가 우대받았다.
세번째 게임 전날 밤, 어둠 속 많은 참가자가 사망하는 집단 난투극. 필자는 이것을 1980년대초 어둠의 터널이라 생각한다. 이 시대를 지나며 우리 사회는 이해관계에 따라 ‘부류’나 ‘계층’ 혹은 ‘지역’으로 강화되었다.
세번째 게임 ‘줄다리기’는 집단의 시대다. 1980~1990년대, IMF까지다. 개인의 역량과 무관하게, 속한 집단의 운명이 곧 목숨줄. 작전과 단합이 중요한 줄다리기처럼 이기는 기업은 성장하고, 지는 기업은 도산했던 시대다.
네번째 게임 ‘구슬치기’는 2000년대 포스트 IMF 시대다. 어떤 룰이건 상대방을 기만해서라도 구슬을 빼앗아야 내가 살아남는 모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생존할 수 있었던 2000년대 초 경쟁시대의 자화상이다.
다섯번째 게임 ‘유리 징검다리 건너기’는 2010년대부터 사회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불평등 시대다. 미리 정해진 운명에 생사여탈이 달렸다. 앞 순서 참가자의 죽음과 재능을 이용해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저 뒷 순서를 뽑은 운이 있었을 뿐이다. 재능과 노력 여부와 상관 없이 남의 희생을 밟고 삶을 영위하는 불평등한 모습이다. 그마저 살아남은 생존자 중 부상자는 밤 사이 희생된다.
마지막, 오징어 게임은 오늘이다. 무한경쟁, 무조건 상대를 죽여야 살아남는 시대다. 양심의 가책이나 약자에 대한 일말의 배려조차 허용되지 않는 게임의 룰, 승자가 모든 것을 다 갖는 시스템은 너무 무섭고 잔혹하다. 비인간적이지만 오늘 우리의 세태다. COVID19를 지나며 세상의 불균형과 불평등은 더 심화되었다. 10년전 만든 이 드라마 시나리오의 끝이 이토록 현실적인지 한숨이 나온다.
마젠타 컬러로 머리를 염색한 이정재가 시스템을 밝히겠다며 시즌 2를 예고한 다음 게임은 무엇일까? 필자는 소망한다. 정당한 노력과 지혜를 모아 참가자를 더 많이 살리면 이기는 게임이면 좋겠다. 현실감 없다고? 좋다. 적어도 많이 웃길수록 이기는 게임이기를! 미래시대는 그렇게 변하면 좋겠다.
정연우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본 칼럼은 2021년 10월 19일 경상일보 15면 ‘[정연우칼럼]트랜스 에라(Trans ERA), 시대변화와 오징어게임’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