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잘 오르는 놈은 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헤엄 잘 치는 놈은 물에 빠져 죽는다’라는 옛 말이 있다. 두 손을 비비고 방 안에만 앉아 있으면 이런 죽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리하면 인류사회가 무덤처럼 되어 발전이 없을 것이다. 나무에서 떨어져 죽을지언정, 앉은뱅이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신채호 선생이 한 말이다.
요즈음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법대 출신이다. 대통령 선거에 떨어지더라도 출마해서 큰 뜻을 실현해 보겠다는데 환영할 일이다. 누군가는 국가를 위해서 일을 해야 하는데 법을 전공한 사람들이 도전적으로 나서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활발한 직업이 법률가인 모양이다. 사법부나 입법부의 경우는 법률을 집행하거나 제정하는 역할을 하니 법을 전공한 사람들이 다수 포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제는 이들이 행정부문에 진출하려고 대거 선거에 나서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이 과연 정상이고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공정과 정의는 누구를 기준으로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정말 어렵다. 자신들이 주도하면 모두가 공정하고 정의로우나 타 진영에서 주도하면 모두가 나쁜 일이고 불공정하며 정의에 어긋나니 처벌해야 한다고 외친다.
나무에 오르는 방법은 기술의 발전으로 도구가 만들어지면서 다양한 방법이 생겼다. 높은 곳을 보기 위해 나무에 오르는 목적은 이미 비행기의 발명으로 후진적 방법이 되었고 이제는 드론을 이용하여 나무 숲 사이를 누비는 시대가 되었다. 세상은 이토록 빠르게 변하고 국민의 의식과 생각도 빠르게 변하는데 과연 법은 이를 따라가고 있는가? 법을 바꾸려면 국회에서 진영 논리에 의해 제정부터 어렵고, 사법부는 과거에 만들어진 법으로 처리하니 이 또한 시대에 뒤떨어진다.
일반 국민들은 법보다는 상식에 의거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과 상이한 법조문에 의해서 유무죄를 판단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다. 일반인들의 여론조사와 정치조직의 주장이 상반되는 경우가 특히 그러하다. 같은 사건을 가지고 검사들과 변호사들은 서로 반대의 주장을 하는 업무를 하다 보니 싸움 전문인이 된 것인가 보다. 판사의 판결도 때로는 보편성이 결여되는 경우가 있어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만들어졌다.
요즈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에도 어김없이 법조인들이 대거 거론되고 있다. 정의롭고 공동체를 수호하는 법조인들이 왜 불법성이 있거나 이권의 아수라장에 발을 들여놓을까? 그러고도 사건이 불거지면 자신과는 무관하고 가짜뉴스라고 우기다가 심지어는 조작, 음해라고까지 한다. ‘법꾸라지’라는 말이 한 사람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기업인들에게는 하청업체가 일으킨 사고조차도 원청에서 책임지라고 하면서 왜 자신이 지휘하던 조직에서 일어난 비리에는 책임지지 않는가? 이게 법률가들이 나서서 부르짖는 공정인가?
단재 선생의 말 뜻은 현실적인 도전 없이는 얻어지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창의성과 도전정신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는 말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구성원들 중에서 유독 법률가들만 이렇게 앞에 나서는 것은 불완전한 사회이고 건강하지 못한 증거이다. 경제선진국이 되는데 기여하신 사람들, 문화강국이 되는데 기여하신 분들의 업적이 법률가들만 못하지 않다.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행동은 창의성에서 시작된다. 자유로운 선진국들의 공통점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소통하며 어우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도 연합국가이고 민족과 언어가 다른 유럽도 연합했다. 극동 3국인 한국·중국·일본을 연합하여 세계의 최고국가를 만들 정도의 리더가 필요하다. 남이 하지 못하는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사람, 사건이 아니라 희망을 보는 사람, 다양한 국민들의 마음을 아우르는 사람, 세계관, 우주관 그리고 국가관이 뚜렷한 사람, 시야가 넓은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김학선 UN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미래차연구소장
<본 칼럼은 2021년 10월 29일 경상일보 14면 ‘[경상시론]나무에 잘 오르는 놈은 나무에서 떨어져 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