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이름난 수산물 중 하나, 굴. 산지로 유명한 통영의 제철 생굴은 얼마나 신선하고 맛있는지 모른다. 만원짜리 한 박스에 수십개 든 우리 굴은 가격도 너무 싸다. 레몬을 곁들여 샴페인과 찰떡 궁합인 석화를 떠올리니, 글을 쓰는 지금 침이 고인다.
언젠가 프랑스에서 굴을 먹었다. 각얼음 쌓인 큰 접시에 작은 굴 고작 6개 얹어서 무슨 보물단지 옮기듯 하는 웨이터의 서빙에 코웃음쳤다. 미팅자리 사람들에게 한국의 굴을 아느냐, 훨씬 싸고 신선하고 더 크고 맛나다고 자랑했다. “오, 정말이냐?”, “몰랐다!”, “한국가면 꼭 굴부터 먹겠다.”는 이야기를 지나며 그 자잘한 서양굴들을 입에 넣었다. 하나 둘 굴 껍데기를 접시에 내려놀수록 뱉은 말을 주워담고 싶어졌다. 세상에… 그 쪼끄만 여섯개가 종류도 맛도 달랐다. 어떤 것은 쫄깃하고 어떤 것은 크리미하고 어떤 것은 고소했다. 미쳤다. 생각지도 못했던 굴맛에 우리 굴은 그저 신선 담백할 뿐 유난 떨며 자랑할 맛이 아니었다. 후에 알아보니 유럽은 많은 종을 연구 개발하고 양식하는 상당한 규모의 굴 산업을 수백년 넘게 지속하고 있었다. 60년대 일본 수출용으로 들여와 경남 통영에서 집중 육성한 한국 굴은 종류도 맛도 산업이나 식문화로서의 규모도 아직 제한적이다.
불고기, 김치, 비빔밥으로 대표되는 한식. 높아진 국가 위상만큼 자부심도 크다. 미디어에는 배추 김치 한 줄기 쭉 찢고, 불고기 한점 , 비빔밥 한입 가득에 엄지척, “맛있어요!”를 외치는 외국인 영상 천지다. 또 우리는 한식이 양식보다 건강하다 여기는데, 전문가 평가는 사뭇 다르다. 한국 음식은 빨갛고 맵단다. 생각해보면 요즘 우리 음식 대부분은 재료가 무엇이던 고추베이스다. 밥도 김치에 볶고, 찌개도 고춧가루, 고추기름, 고추장을 넣는다. 제육볶음, 닭갈비, 두루치기, 막국수, 아구찜, 무슨 탕 할 것 없이 빨갛고 맵다. 심지어 달다. 갈비, 불고기, 김치찌개, 된장찌개, 떡볶이, 각종 무침, 떡, 빵 마저 한국음식은 달다. 요리해본 사람은 알지만 요즘 한식에 설탕은 필수다. 빨갛거나 맵거나 달거나 중 두개 이상이면 한식이라는 웃픈 감별법이 세상에 나돈다. 그런 한식이 건강할까? 음식관련 국제기구가 발표한 한식의 건강점수는 유럽은 물론 일본이나 중국 음식보다 낮다. 뭐 이 데이터를 수긍하는 우리나라 사람은 거의 없다. 평가기준이 불공정하고 편파적이라는 의견은 전부 한국인. 비뚤어진 자존감이다.
술. 그 유명한 우리의 소주는 초록병에 든 희석식 화학주다. 호불호를 떠나 세계의 입장 표명은 터프하다. 달다, 부드럽다, 역하다, 다음날 머리 깨진다, 힘들다는 평은 결국 이 알콜18도 국민술에 얼마나 많은 인공감미료를 넣어 조미했나를 증명하는 셈이다. 소주라는 이름부터 잘못이다. 전통소주는 정성들여 증류해서 만든다. 화학적 주정처리에 온갖 인공첨가물을 넣어 만든 술을 왜 소주라 부르나? 세상 수많은 와인제조법과 분류체계, 위스키나 맥주도 어떤 이름을 붙이려 지키는 제조공정과 디테일은 악마가 따로 없다. 우리는 쉽게 그깟 와인, 그깟 위스키, 그깟 맥주라면서 정작 제조규격도 종류도 모호한 국산술에는 쉽게 전통주라 이름붙인다. 우리도 모르는데, 세상이 알아줄까? 세계적인 술장르 사케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제조법을 관리하고 철저한 등급제로 완성되었다. 그런 노력의 효과로 일본산 위스키조차 수요가 폭발해 가격이 몇배로 뛰고 있다. 한우가 좋다고 아무리 자화자찬해도, 세계인의 입맛에는 육질은 앵거스보다 못하고 고베와규보다 부드럽지도 않다고 한다. 아직 5개국 밖에 안되는 한우 수출이나 보급도 규격, 절차, 규모, 품질 등의 문제로 갈길이 아직 먼 현실이다.
싱가포르에 짧은 출장을 왔다. 예전보다 한식당, 한국음식이 눈에 띄는 빈도는 늘었지만 여전히 일본 식보다 낮은 가격과 대우를 받고 있다. 안타깝다. 아무리 BTS가 세상을 날아다녀도 우리 제품, 우리 음식과 우리 술이 저절로 사랑받을 수는 없다. 한류를 만병통치약이라 생각하지 않기를. 코카콜라 좋다고 미국에 충성 안하듯, 오겜 보유국이라고 무조건 대한민국 숭배를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류 어드벤티지는 작은 관심 정도다. 관심 너머 마음 얻고 사랑 받으려는 필요한 피나는 노력을 내가 하고 있나?
자존감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만들어지고, 상대를 인정하는 모습으로 표출된다. 잘 모르면서 오랜 노력의 결과물을 함부로 폄하하는 세태. 내가 좋으면 다 좋다는 근자감은 십년전 ‘두 유 노 싸이?’ ‘두 유 라이크 김치?’와 달라진 게 없다. 우리 자존감과 실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왜 이리 와 닿을까. 굴맛도 모르고 통영굴이 최고라 까불던 나 자신부터 부끄럽다.
정연우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본 칼럼은 2022년 4월 19일 경상일보 15면 ‘[정연우칼럼-아웃사이트(4)]한류와 음식: 자존감의 아웃사이트’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