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말에서 7월 말까지는 장마철이다. 장마철에는 일기예보와 상관없이 그래도 혹시 몰라서 우산을 챙기게 된다. 집안이 눅눅해 지고 구석구석 안 보이는 곳에 곰팡이가 핀다. 빨래도 잘 마르지 않지만, 그래도 요즘에는 제습기가 있어서 그나마 불편이 적어졌다. 먹는 것도 조심이다. 식중독이 잘 생겨서 물도 끓여 먹게 되고 음식도 가려먹게 된다. 오랜 경험으로 우린 몸으로 안다. 매년 되풀이 되니까.
장마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지구에 해와 달이 뜨기 시작하는 태고적부터 있었을까? 한반도에서 문명이 시작되고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기록들에도 장마는 있다. 가까이는 500년 전 임진왜란 때 난중일기에도 보인다. 이순신 장군은 전장에서 난중일기를 꼬박꼬박 적으며 날씨의 변화를 매우 소상하게 기록했는데, 장마가 걷히고 가뭄이 들고 더위가 혹심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몸으로 느끼는 여름철 날씨의 계절내 변화와 매우 비슷하다. 장마로 조선 건국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고려말 명나라를 정벌하려는 계획에 태조 이성계는 여름철의 대규모 군사 작전이 장마로 불리하다는 의견을 내지만 묵살되고 결국에는 장맛비로 크게 불어난 압록강물로 위화도에서 회군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볼 때 선조들은 이미 되풀이 되는 반복된 경험으로 장맛비가 내리는 대략의 시기와 많은 비를 예상하고 있었다.
장마는 여름철에 길게 오는 비를 뜻한다. 장마의 시작 시기는 매년 다르지만, 통상 남쪽부터 시작되어 북상하는 규칙성이 있다. 이에 따르면 제주에서는 6월19일, 남부지방은 6월23일, 중부지방은 6월25일 정도가 평균적이다.
일본과 중국도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우리의 장마와 비슷한 우기가 있다. 통상 6월 중순에 시작해서 일본에서는 바이우, 중국에서는 메이유라고 부르는데 한문으로는 매우(梅雨)로 같다. 이름에 매화 매(梅)자를 쓰는 이유는 6월 중순이 매실이 열리는 시기여서 그렇다.
우리만 다른 이름을 쓰는 것은 우리 민족의 사회 문화적 정체성이 뚜렷한 것도 있지만, 과학적으로도 장마는 열대 지방과 중위도 지방에서 내리는 강수 형태가 혼재되어 나타나서 바이우나 메이유와는 구별되는 고유한 특징이 있다.
미국 동부의 워싱턴DC 지역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위도대에 있어 사계절이 뚜렷하고 허리케인(태풍)의 내습도 잦지만 장마와 같이 거의 한달 간 지속되는 우기는 없다. 초여름에 경험적으로 우산을 들고 다니던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 동부로 이주하게 되면 주구장창 내리던 비가 내리지 않아 매우 어색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장마는 동아시아 몬순 현상의 일부로 유라시아 대륙과 열대 해양 간의 열 에너지 차이를 해소하려는 거대 규모의 대기 운동이며, 이 과정에서 열대 해양에서 증발하는 다량의 수증기가 대륙으로 수송되어 비로 내리게 된다. 물 없이 문명은 존재할 수 없다. 장마는 우리에게 재난을 가져오지만 겨울철에 부족한 물을 여름철에 확보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
장맛비가 적당히 내려서 댐과 저수지에 알차게 쌓이면 좋은데 너무 길거나 집중호우 형태로 한번에 많이 오면 홍수로 이어지며 막대한 피해를 낳는다. 지난 2020년은 관측사상 가장 긴 장마로 1조 이상의 막대한 재산피해가 있었다. 반면에 2018년이나 작년과 같이 장맛비가 약해지면서 수해보다는 폭염과 가뭄 피해가 극심했다.
매년 장마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날 것인가는 사회적 관심이 매우 높지만, 최근 들어 장마의 기간이나 강수량의 변동이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지난 10년간은 장마로 인한 강수량이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지만, 집중호우의 강도는 더욱 강해지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전지구적인 지구온난화가 장마의 진행도 교란시키고 있는지는 아직까지 관측자료의 분석 가능한 시기가 짧아 분명하지는 않다.
그러나, 장마가 전지구적인 에너지 교환과 수증기 수송과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북극의 온난화나 열대 해수면 온도 상승이 장기적으로 장마를 변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수퍼컴퓨터로 예측되는 미래의 장마는 더욱 불규칙해지며 강수량은 현재보다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옛말에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는 말이 있다. 가뭄은 아무리 극심해도 어느 정도는 거둘 것이 있지만 큰 장마 뒤에는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을 정도로 파괴적인 자연재난이라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 발표를 보면 2020년 역대로 긴 장마로 인한 민원이 다른 민원을 넘어 사상 최대였으며, 최근 5년간 ‘장마 민원’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막대한 사회적 피해를 감안할 때 장마의 예측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사회적 수요도 매우 높다. 틀릴 것을 두려워해서 장마를 예측하지 않거나, 장마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장마를 예측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명인 UNIST 도시환경공학과 교수 폭염연구센터장
<본 칼럼은 2022년 6월 24일 경상일보 15면 ‘[이명인의 기후와 환경(6)]장마는 전지구적인 대기순환의 결과’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