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으로 들어가려던 많은 난민이 지중해를 건너다 무더기로 익사하는 사건이 종종 보도된다. 지난 2일 터키 해안에서 익사한 채 발견된 세 살짜리 시리아 어린이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은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지옥이 지상에도 있다면 저런 곳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는 한국을 ‘헬(hell) 조선’이라고 부르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한때 미국은 ‘재미없는 천국’이고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란 표현이 유행했다. 그런데 ‘헬조선’은 그런 낭만적 표현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죽창 앞에선 모두가 공평하다’는 섬뜩한 구호를 어찌 치기 어린 청년들의 푸념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왜 한국의 청년들은 분기탱천한 ‘앵그리 세대’로 변해가고 있는가. 연애·결혼·출산에 주택·인간관계 그리고 (취업)희망과 꿈마저 포기하는 ‘7포 세대’로 자신을 비하하는 청년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교육비가 너무 비싸다는 것, 교육의 사회적 미스매치가 너무 크다는 것, 취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자신들의 문제가 기존 사회구조의 잘못에 기인함에도 불구하고 ‘노오력’하면 된다면서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는 ‘꼰대’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에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정부도 청년 고용절벽 해소를 위한 공공부문의 고용확대, 창업, 해외취업 등 여러 대책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결국 기업의 몫이다. 기업이 창의성을 발휘하고 생산성을 높여 점차 치열해지는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을 향상시키도록 해야 한다. 정년은 연장하면서 임금체계는 그대로 두면 고용이 줄어들 우려가 있다. 급변하는 기업환경 변화에 대처할 수 있도록 노동 유연성 및 생산성과 연계된 임금체계 등과 같은 노동개혁이 절실하다. 교육의 접근성과 비용감당성을 무크(MOOC·온라인공개강좌)와 같은 새로운 교육모델을 통해 대폭 확대해 필요한 직무능력 교육을 원하는 누구나 쉽게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일자리를 늘린다고 해서 ‘헬조선’으로 나타나는 청년들의 부정적 감정을 다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은 탈(脫)이념화 내지 허무주의 성향으로 기울고 있다. 2030세대의 절반은 조국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고 하고, 한국 국민으로 살지 않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3분의 1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빈부갈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한국은 88%로 일본(35%)의 두 배가 넘고 대만(30%)의 세 배에 가깝다. 저(低)성장 경제구조와 청년실업 문제가 한국에만 유독 심각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초 한 서울대생이 쓴 ‘대한민국의 미래는 필리핀이다’는 글이 아직도 유효한 것으로 믿고 있는 청년들의 문제는 ‘경제적 문제’를 넘어 ‘심리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관점에 부합하는 현상과 사실만을 보면서 편견을 더욱 굳혀가는 확증편향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또 잘 되는 것은 내 덕분이고 잘못되는 것은 주위환경 탓으로 돌리려는 이기주의 성향도 심하게 나타난다. 왜곡되고 편향된 뉴스나 의견을 사실인 양 전달하는 인터넷 미디어들도 이 같은 부정적인 프레임을 확대 재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1% 기득권자와 99% 노예’의 극한 대립구도를 설정하고, 내전 등으로 인해 훨씬 어려운 처지에 있는 지구촌의 이웃이 많음을 보면서도 자신이 사는 나라를 서슴없이 ‘망한민국’, ‘지옥불반도’라고 부르는 이들의 뒤틀린 심사는 경제와는 별개 차원의 대책을 요구한다.
임진혁 < 울산과학기술대 교수·경영정보학 imj@unist.ac.kr >
<본 칼럼은 2015년 9월 19일 한국경제 31면에 ‘사회적 심리치료 필요한 ‘헬조선’ 증후군’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